왜 말이 안 통하는 일이 생길까

국민의 신의를 잃어서는 나라 자체가 성립 될 수 없다.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기 위한 촛불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6.10 항쟁 기념일을 전후하여 예상 외로 많은 인파가 모이자 그 배경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분명한 것은 쇠고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불만 요인들이 용해되어서 쇠고기로 터졌다는 분석이다. CEO출신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몰라 초래된 시행착오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결국 대통령은 취임 100일이 갓 지난 시점에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치를 아는 인사들을 주축으로 청와대 비서진을 다시 꾸렸다. 정치가 무엇일까. 논어에서는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제자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정치의 요체 세 가지를 제시한다.
“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지의(民信之矣) :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비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란 첫째가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하는 足食(족식)정책이다. 백성들이 배고프면 정치의 한 축이 무너진다. 경제가 정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정치인들은 “경제인은 정치를 몰라도 된다. 하지만 정치인은 경제를 몰라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경제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천년제국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는 足兵(족병)정책이다. 안보가 흔들리면 나라가 위협받게 된다. 국방을 지키는 군인들이 풍족함을 느끼고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현충일을 정하고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을 기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족병정책의 일환이다.

정치의 세 번째 덕목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는 民信之矣(민신지의)정책이다. 정치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국민은 정치인에게 국민의 편에서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국민의 대표로서 일해 줄 것을 위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 국정을 이끌어 국민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흔히 이 세 가지를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요소라고 하여 ‘치국삼요(治國三要)’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 셋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자공과 공자의 정치에 관한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그 우선순위를 찾아보자.

“이 셋 중에서 하나를 버린다면 무엇입니까?”
“군비이다.”
“나머지 2가지 중에서 또 하나를 버린다면 어떤 것입니까?”
“식량이다.”
그리고 공자는 정치의 핵심에 대해 결론을 내린다.

“백성의 신뢰를 잃어서는 나라 자체가 성립 될 수 없다 :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여기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란 정치의 핵심철학이 등장한다. 이는 백성들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足食과 足兵을 버린다는 것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民信之矣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세 가지 정책은 정치의 기본인데 그 중에서 백성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한자의 믿을 신(信)자 속에 그 답이 들어 있다. 사람 人(인) 에 말씀 言(언)자로 되어 있으니 신뢰는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말이 없으면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신뢰가 떨어진다. 신뢰가 무너졌다면 말이 통하지 안했다는 의미다.

말이 안 통하는 경우는 말을 일방적으로 했을 때이다.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처럼 수직적인 조직구조에서는 동기가 순수하다면 일방적으로 말을 해도 신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식사회에서는 쌍방향의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목적이 순수할 지라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신뢰에 손상이 간다. 수평적인 조직구조에서는 과정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이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시대는 지나갔다. 목적뿐만 아니라 과정도 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통령이 힘든 이유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너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오늘 대통령의 어려운 입장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발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업이나 다른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장, 사장, 임원, 부장, 팀장은 “대통령의 모습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곧 나의 모습일 수 있다. 공자가 제시한 足食, 足兵, 民信之矣가 나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평가해 보자”는 적극적인 자세가 요망된다. 그리고 民無信不立이란 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