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만 몰랐던 윤석금의 '한달 작전'

"채권자들과 관계자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누를 끼치게 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신광수 웅진홀딩스 (1,120원 0.00%) 대표이사는 27일 오전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떨궜다.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보려 최선을 다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웅진그룹이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사인 극동건설의 기업회생(법정관리)서를 제출하기 직전 벌어진 일련의 상황 곳곳에서는 이같은 설명과는 다른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흔적이 발견된다.

윤석금 웅진회장은 법정관리 신청직전 알짜 계열사 지분을 이동시키고, 계열사에게 빚을 미리 갚는 등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뒀다. 이런 가운데 윤회장의 부인 등 친인척과 주요 경영진 등 내부자들은 지분을 미리 팔아 현금을 마련하고 손실을 피했다.

윤회장은 이와 관련,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홀딩스 지분을 74%나 갖고 있어 (감자로 인해)지분이 소각돼도 최소 30% 이상 지분율을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홀딩스와 극동건설 외에 다른 계열사는 법정관리를 신청하지 않을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법정관리를 통해 빚은 유예시키되, 현재대로 경영권은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두 회사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점을 확인한 것.


◇ 알짜 계열사 지분, '직할' 가능한 회사로 이동

지난 4일 웅진홀딩스는 중부세무서로부터 118억 3400만원의 징수유예를 받는 조건으로 극동건설 자회사인 (주)렉스필드컨트리클럽이 보유한 토지를 142억원에 담보로 제공했다.

이어 14일에는 렉스필드컨트리클럽이 보유하고 있던 자회사 웅진플레이도시(워터파크 등 사업)의 우선주 80.26%(600만주)를 9억원에 웅진홀딩스에 매각했다.
부실이 심해져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극동건설의 자회사를 통해 윤석금 회장이 절대지분을 가진 웅진 홀딩스의 세금납부를 유예받고, 웅진플레이도시는 웅진 홀딩스로 지분을 옮긴 것.

극동건설은 또 최근 제주도 비즈니스호텔인 '오션스위츠 제주호텔' 지분 100%를 웅진식품에 넘겼다. 주식양수도계약은 이번 주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웅진플레이도시와 오션스위츠호텔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자체적으로 이익을 내는 '알짜'회사들로 알려졌다.

경영진이 사전에 극동건설을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회사들을 중심으로 '재기'를 도모하기 위해 우량 회사들을 주력 기업 소속으로 재정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 법정관리 제외 계열사 빚, 만기 전에 미리 갚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 전날인 지난 25일 웅진씽크빅 (2,140원 ▲10 +0.47%)(250억원)과 웅진에너지 (52원 ▼33 -38.8%)(280억원)로부터 빌린 단기차입금 530억원을 모두 조기상환 했다.
이 단기 차입금은 지난 19일 웅진홀딩스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빌린 돈으로 금리는 6.9%, 만기는 오는 28일이었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대출, 채권 등 모든 부채는 동결된다. 법원이 청산 또는 회생절차를 결정할 때까지 원리금 지급이 연기되는 것. 또 청산이나 회생절차가 결정되더라도 회사 재무사정과 채권단 협의 등에 따라 원리금을 손해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윤회장이 법정관리 신청 대상이 아닌 계열사로 현금을 이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업계관계자는 "법정관리 신청직전 계열사 차입금을 조기상환한 것은 다른 채권자들을 무시한 전형적인 모럴헤저드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상적인 대여 대출이라도 법정관리를 하루 앞두고 계열사 채무부터 먼저 변제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채권단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초단기로 필요해서 빌린 것으로 여건이 돼서 빨리 갚았다"며 "원래 그럴 계획이었고 이전에도 그렇게 해 왔다"고 해명했다.

◇ 가족 등 '내부자' 사전에 지분 매도

앞서 윤석금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씨 등 총수일가는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전에 웅진씽크빅 등 계열사 주식을 처분해 불공정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윤 회장의 부인인 김향숙씨는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인 지난 24일과 25일 각각 3만 3861주와 1만 920주 등 0.17%의 웅진씽크빅 보유지분 약 4억 가량을 전량 매각했다.
윤석금 회장의 친척인 윤석희씨도 이달 들어 9월 14, 19, 21, 24, 25일 등 5회에 걸쳐 웅진코웨이 2890주를 약 1억 1000여만원에 매도했다.

지주사인 웅진홀딩스 경영지원실장인 우정민 전무도 웅진코웨이 2만 4648주를 8월27일과 9월14일, 20일 세차례에 걸쳐 전량 매도했다.
윤 회장의 친인척이나 핵심 참모들이 법정관리 직전에 지분을 매도한 데 대해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손실 회피 등 불공정거래 혐의가 없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한편 웅진코웨이를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금 596억원을 지급했던 MBK파트너스는 웅진이 MBK와 협의를 거치지 않고 전격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하고 거래 중단을 통보한데 대해 법적대응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MBK는 당초 오는 10월 4일로 약속했던 웅진코웨이 30.9% 인수 잔금납입 시한을 웅진 측의 요청으로 오는 10월 2일과 9월 28일 등 두 차례나 앞당기면서 실무진행을 계속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