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된 국내 첫 서민아파트 '금화시범', 지금은…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한 금화시범아파트 3동 전경 /사진 = 이재윤 기자

　"살길이 막막합니다. 수십년 넘게 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수도나 전기가 제대로 안나온 지 한참 됐어요. 그러다보니 겨울에는 친척집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는 신세죠."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금화 시범아파트 주민 A씨(40대)가 지난 13일 현장시장실을 운영중인 박원순 서울시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꺼낸 하소연이다. A씨는 박 시장에게 "다른 거처를 마련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금화 시범아파트는 첫 눈에 보기에도 사람이 살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후화돼 있었다. 42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보였다. 외벽이 갈라지고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대부분 부서져 있었다. 난간도 없어 위험해보였다.

　아파트 안에 들어서자 사람 손이 닿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부분 빈집이지만 간혹 우편물이 와 있거나 생활 쓰레기가 버려진 곳도 눈에 띄었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금화시범아파트에 붙어있는 재난위험시설 지정 표지판 /사진 = 이재윤 기자

　외벽을 따라 만들어놓은 수도관도 있었다. 시설이 낡아 물이 나오지 않자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화 시범아파트는 1971년에 지상 1~5층 4개동 규모로 지어졌다.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뒤편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자리잡았다.

　지어질 당시에는 불법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가 처음 들어선 것이다. 현재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3·4동 2개동만 남았다. 주변에 위치한 나머지 아파트는 전부 재개발돼 입주까지 마쳤다.

　40년 넘게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최모씨(86)는 "정이 들어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정말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여름에는 그나마 난방이나 온수를 안쓰니까 잠은 잘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자치구는 이주비용 등 경제적 여력이 없는 주민 7가구를 포함해 현재 13가구가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은 자진해서 집을 빼거나 시가 제공하는 인근 임대주택 등으로 이주했다. 이곳의 개발이 시급한 이유는 안전문제다.

　이 아파트는 2007년 7월 건물 안전검사에서 최하등급인 '재난 E등급 위험시설물'로 지정됐다.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아파트가 붕괴될 경우 거주민은 물론 아래에 위치한 주민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점검 당시 즉각 사용을 중지하고 재개발을 추진했어야 하지만 돈 문제로 추진되지 못했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한 금화시범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40대 여성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 = 이재윤 기자

　북아현3 재정비촉진구역에 속한 이 아파트의 조합원은 총 68명이다. 1가구당 1억원에 달하는 감정평가 비용과 재개발계획에 따른 공원 조성까지 105억원의 비용을 놓고 시와 구, 사업주체인 조합이 2년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땅은 시 소유지만 건물은 분양을 받은 개인 소유여서 문제 해결이 더 쉽지 않다.

　조합 관계자는 "시유지여서 시가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과거 시 예산이 없어 조합으로 편입됐지만 재건축사업이 늦어지면서 조합 상황도 좋지 않다"며 "법적으로도 조합은 관리처분이 나야 이주지원비 등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시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구에서도 주민들의 안전을 고려해 사업을 빨리 추진해야 하는 만큼 시가 비용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시는 특정 재개발사업에만 특혜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주민 안전을 위해 조속히 합의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합은 금화 시범아파트의 재개발과 별도로 용적률 20% 상향을 요청했다. 소형 면적의 규모를 늘리라는 시의 요청을 받아들이려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조합은 시에 자문을 요청한 상태다.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위치한 금화시범아파트 4동 전경 /사진 = 이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