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열쇠는 흉기, 각목은 흉기가 아니다?

일상적인 물건들도 상황에 따라 '흉기'나 '위험한 물건'으로 분류될 수 있다. / 사진=영화 '황해' 캡처

#지난해 5월 A씨(23)는 새벽 3시쯤 광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 B씨(20)에 대해 성폭행을 시도했다. A씨는 20cm 가량의 닭꼬치용 나무꼬챙이를 들고 B씨를 위협했다. B씨는 이내 꼬챙이를 잡아서 부러뜨렸고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나무꼬챙이가 쉽게 부러질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는 이를 '흉기'로 판단하고 일반 성폭행 미수에 비해 형량을 높게 선고했다.


현행 형법 및 형사특별법 등에 따르면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폭행, 협박 등을 할 경우 '특수' 범죄로 간주된다. 단순히 죄명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처벌도 가중된다는 점에서 흉기나 위험한 물건의 사용 여부는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그러나 특정 물건이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으로 성립하는지 판단하는 법적인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때문에 흔히 위험한 흉기 또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흉기로 판결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여성용 하이힐은 뒷굽이 뾰족하다는 이유로 흉기로 판결난 경우가 있다. 바느질할 때 사용하는 작은 쪽가위는 위험한 물건으로 판결된 사례가 있다.


각목은 흔히 흉기로 알려져 있지만 쇠파이프로 공격하는 상대에 대항해 사용한 경우에는 흉기로 보지 않았다. 당구공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때려 입술과 머리가 부어 올랐는데 이를 위험한 물건으로 인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같은 물건을 두고도 판단은 엇갈린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2008년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은 상대방을 자동차 열쇠로 배를 찔러 다치게 한 사건의 경우 자동차 열쇠를 위험한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6월 울산에서 일어난 자동차 열쇠로 여성을 위협하고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의 경우에는 자동차 열쇠를 흉기로 인정했다.

한 변호사는 "똑같은 물병이라 해도 유리병인지 플라스틱 병인지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진다"며 "심지어 플라스틱 물병이라도 안에 물이 들어 있다면 위험한 물건이라 주장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흉기나 위험한 물건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흉기나 위험한 물건의 경우 법적으로 항목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등을 기준으로 재판부가 일일이 판단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흉기는 사건 당시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판단돼 항상 일률적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흉기 사용 여부에 따라 법 적용도 달라지고 형량도 크게 변하는 만큼 어느 정도 객관화된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폭행에 물건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