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피해 無" 해명에도 탄저균 사고 석연치 않은 이유

미군 시설에 보관 중이던 살아있는 탄저균이 오산 주한미군 공군기지로 잘못 보내졌다고 미국 국방부가 밝힌 가운데 28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K-55정문에서 위병들이 부대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미국 군 연구소의 부주의로 오산 미군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사건과 관련, 주한미군 측은 감염 등 인명피해 가능성이 없다며 사태를 수습하고 있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측이 탄저균 배달 시점과 탄저균이 살아있음을 인지한 시점, 탄저균의 배송량, 실험과정과 폐기처분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데다 오산기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접근권이 극도로 제한돼 사태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현지시각으로 27일 성명을 통해 "유타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샘플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다"고 발표했다.

워런 대변인은 "탄저균 샘플 한 개는 한국 오산에 위치한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ITRP)로 보내졌다"며 "현재까지 일반인에 대한 위험 요인은 발생하지 않았고 발송된 표본은 규정에 따라 파기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측은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27일 오산 공군기지에서 해당 표본으로 배양실험을 하다가 탄저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규정에 따라 폐기처분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또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샘플의 노출 가능성을 조사하기 위해 신중한 예방조치를 실시했다"며 "관련 시설물을 차단하고 연구소에 있던 22명에게 항생제와 백신을 투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며 감염증상을 보이는 요원은 없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이번 사고가 비활성화된 탄저균이 실수로 활성화된 단순 '사고'라며 논란을 일축하고 있다.

기침과 발열 등 감기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고전염성 탄저균은 생물학 테러에서 흔히 쓰이는 병원균 중 하나로, 연구 목적으로 탄저균을 옮기더라도 반드시 죽거나 비활성화된 상태에서 운반해야 한다.

탄저균을 살아있는 상태로 이동시킬 경우엔 용도와 관계 없이 국제적 협약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에 신고하고 규정된 용기에 담아 이동시켜야 하며 해당국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해야 한다.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SOFA)도 위협 물질을 반입할 때는 우리측 질병관리본부에 통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훈련용 표본으로 생각했기에 위협 물질이라 판단하지 않아 탄저균 반입 사실을 정부에 사전통보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레이먼드 오디어노 미국 육군참모총장은 탄저균을 발송한 미국 유타주 더그웨이 검사소에서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탄저균을 비활성화하는 살균처리를 시도했고 이후 선적도 규정대로 진행됐지만 결과적으로 탄저균 비활성화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언제든 살균처리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현재 우리 정부가 이 같은 경우에 대비할 방법은 없다.

소파협정 9조에는 '합중국 군대에 탁송된 군사화물' 등에 대해서는 세관검사를 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군 측이 이번처럼 실수로, 혹은 위험물질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위협 물질'로 신고하지 않으면 우리 측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번에 생탄저균이 민간운송업체인 페덱스(FedEx)를 통해 일반 화물과 함께 배송되는 사태는 이런 소파협정 때문에 가능했다.

미군은 지난 1년에 걸쳐 생탄저균을 주한미군과 미국 내 18개 연구소에 제공했으나 우리 정부는 사고 발생 후에나 사실을 파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오산기지에 있던 주한미군 관계자 22명이 실험과정에서 탄저균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미국 국방부가 급히 발표하지 않고 넘어갔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오산기지 내에서 탄저균 실험을 해온 의도를 놓고도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주한미군 측은 실험 목적을 밝히지 않은 채 "(이번에 배송된) 탄저균 표본은 오산 공군기지 훈련 실험실 요원들이 훈련하면서 사용했다"면서 "훈련은 정상적인 관리 절차에 의한 정례적인 실험실 규정에 의해 시행됐다"고 말했다.

미군 측의 석연찮은 설명에 북한군의 생화학무기 공격에 대비한 생물무기 등 살상무기 보유를 목적으로 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탄저균은 1995년 일본에서 살포됐고, 2001년 미국에서 탄저균이 묻은 편지를 발송해 22명이 감염되고 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생물무기로서의 이용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29일 질병관리본부는 현지조사에 나섰지만 미군이 사고가 발생한 오산기지 '주한미군 합동위협인식연구소'를 잠정 폐쇄했다고 알려져 실제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