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명수배자?" 범죄자 취급 당한 억울한 시민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김종훈 기자

최근 시민들이 본인도 모르는 새 '지명수배자'가 돼 경찰서에 수갑이 채워져 끌려갔다 풀려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진=뉴스1

#1 지난 17일 저녁, 혼혈인 오모씨(49)는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과 금전 문제로 다툼이 생겼다. 동생의 식당에서 싸움이 격해질 것 같자 경찰을 부른 오씨. 경찰은 두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어 신원 조회를 하더니 돌연 갑자기 신고자인 오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항의하자 경찰은 'A급 수배자'기 때문에 긴급 체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씨는 "이전에 경찰서에서 수사받던 사기 혐의가 무혐의 처분난 지 오래인데 무슨 수배자냐"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너 보이스피싱이냐" "어느 나라냐"며 혼혈이라는 이유로 인격 모독적인 발언까지 서슴없이 했다.

그러나 당시 그를 담당했던 경찰에게 확인한 결과 오씨의 주장은 사실로 드러났다. 해당 경찰관이 오씨가 무혐의 처분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수배를 풀지 않았던 것이었다. 경찰서 벤치에 수갑으로 묶여 범죄자 취급을 받던 그는 3시간 넘게 조사를 받은 끝에야 풀려나 집에 갈 수 있었다.

#2지난 26일 새벽, 술에 취해 편의점에 갔다가 신고를 받고 순순히 순경을 따라 파출소에 간 우모씨(55)는 인계된 경찰서에서 돌연 수갑을 차게 됐다. 신원조회 과정에서 그가 'B급 수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수배자가 된 것은 경범죄 벌금 15만원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사를 받던 그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수갑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경찰이 가진 열쇠로 수갑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수갑 열쇠를 찾고, 망치로 때리는 해프닝 끝에 결국 119구조대가 와 수갑을 절단해 풀려날 수 있었다.

최근 시민들이 본인도 모르는 새 '지명수배자'가 돼 경찰서에 수갑이 채워져 끌려갔다 풀려나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경찰은 인적조회시 수배자라는 사실이 뜨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혐의에 비해 공권력의 남용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명수배자는 크게 A급수배자, B급수배자, C급수배자로 나뉜다. A급수배자는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돼 체포·구속영장이 발부된 경우다. B급수배자는 검찰에서 벌금형을 부과한 사람이 기간내에 이를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 C급수배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벌금형이 의심되는 경우다.

이렇게 범행을 의심받고 지명수배자가 된 인원은 2012년 8만9876건, 2013년 9만141건, 2014년 8만148건 등으로 매년 평균 8~9만건 정도씩 엇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인원이 모두 혐의가 있거나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A급수배자였던 오씨처럼 무혐의인 경우도 있으며, B급수배자였던 우씨처럼 경범죄 벌금을 내지 않은 경우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피의자는 억울하고, 경찰은 난감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과 미출석자가 같이 '지명수배자'로 묶여있는 현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점은 경찰 내부에서도 공감하고 있다"며 "긴급 체포를 했는데 결국 혐의가 없거나 사안이 너무 경미한 경우 시민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기에 경찰들도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인권운동가들은 현재와 같은 지명수배자 제도가 분명히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다며 비판했다. 오로지 행정상 편의와 내부 절차 때문에 시민의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국민들의 인식 속에서 지명수배자라고 하면 살인, 강간, 방화범같이 당장 검거해야 하는 범죄자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아닌 상황"이라며 "전혀 사회적 위협이 없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지명수배를 해 신체의 자유 구속이 남발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수갑이라는 장구 사용은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하는데 15만원짜리 벌금체납자에게 채웠다"며 "이는 위법부당한 공권력 남용이며 100% 경찰의 잘못"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피해를 당한 시민들에게 진정서를 넣으라고 안내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경찰도 지명수배자라는 사실만 알 뿐 범행 내용을 모르게 전산화가 돼 있기 때문에 수배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경미한 범죄의 경우 '지명수배자'라는 살벌한 분류를 하지 말고 벌금미납자, 장기불출석자 등으로 세분화해야 불필요한 지명수배자 양산을 막아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