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버스커 "꿈도 좇고 돈도 벌어요"

인사동 버스커 허웅희씨(33)./사진제공=허웅희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늦은 밤 인사동 거리, 기타 선율과 함께 김광석인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젊은 시절 즐겨 듣던 노래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노래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댄다.


인사동에서 버스킹(거리 연주)을 하고 있는 허웅희씨(33)는 2년째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거리에 머물게 한다. 허씨는 매일 2시간 가량 기타를 메고 줄을 튕귄다. 앰프 없이 맨 목으로 노래를 부른다.

허씨는 2002년 대학가요제부터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탈락에 탈락을 거듭했지만 무대를 향한 열망을 놓지 않는다.

◇"버스킹이 멋있다고? 내게는 먹고 사는 일"

허씨가 매일 인사동 거리에서 노래하는 이유는 노래가 꿈이기도 하지만 버스킹이 생계를 지탱해주는 '일'이어서다.


허씨는 2009년부터 버스킹을 시작하기 전까지 약 4년 간 오디션을 준비하며 마트 물류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급은 100만원 남짓이었다. 허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노래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게 낫겠다 판단해 버스킹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허씨는 매일 두 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충당한다. 버스커의 인기에 따라 수입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경기가 좋았을 때와 달리 요새는 쉽지 않다"며 "특히 주변에 새로 등장한 버스커가 인기가 많아지면 수입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허씨는 "사람들은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하는구나. 멋있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물론 버스킹이 꿈을 위해서인 것은 맞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버스커 허웅희씨(33)가 석촌 호수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사진제공=허웅희

◇"거리는 매일 전쟁터…하지만 사랑을 찾게 해준 곳"

버스커의 일상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매일 전쟁이다. 한 두 시간 가량은 노래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주변 상인들 눈치를 살펴고 때로는 싸워야 한다.

허씨는 "한 번은 건물주가 음악 소리에 잠을 설쳤다며 술 병을 들고 나와 협박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려는 상인들도 꽤 많다"며 "상인들은 경기 불황의 원인을 버스커 때문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고 토로했다.

다른 버스커들과 치열한 자리 경쟁을 해야 한다. 자리를 차지한 이후에는 소리 크기의 문제로 다툰다. 허씨는 "한 버스커가 앰프를 켜고 큰 소리로 공연하는 경우 주변 다른 버스커의 음악 소리가 묻혀 피해를 입는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씨는 "악기 가방 등 물건을 발로 차거나 동전을 던지며 놀리고, 기타줄에 담배를 끼고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길거리는 험난한 전쟁터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허씨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다 만난 인연으로 두 번의 연애를 했다.

◇"5살 때부터 키운 꿈 포기 안해…버스킹 문화 선진화됐으면"

허씨는 5살 때부터 음악인을 꿈꿨다.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을 때 유일한 친구가 음악이었다. 대학을 진학한 것도 대학가요제 출전을 위해서였다.

허씨는 앞으로도 음악을 계속할 생각이다. 허씨는 "인사동에서 함께 버스킹하던 형이 있었는데 최근 스트레스로 목숨을 버렸다"며 "형이 사라지자 함께 할 동지를 잃었다는 생각에 위축됐다"고 말했다.

이어 "형이 좀 더 버텨줬다면 힘든 일들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음악을 하려는 후배들을 위해서 나부터 음악과 공연을 포기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또 버스킹 문화가 선진화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허씨는 "일본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일본인들은 버스커를 '선생님'이라 부르고 팬클럽까지 만드는 등 호의적"이라며 "우리나라는 '딴따라다' '구걸한다'며 버스커를 낮잡아보거나 상업에 방해가 된다고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버스킹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해 관광 콘텐츠로서도 인식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