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살인' 맨손으로 잡은 경찰…'총 쏠까? 말까?' 딜레마

성수지구대 소속 김성규 경위와 주재진 경사가 지난 17일 서울 성수동에서 3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온 김일곤을 제압하고 있다. / 사진 = 뉴스1(YTN화면캡쳐)

#지난 17일 시민의 신고로 붙잡힌 '트렁크 살인' 사건의 피의자 김일곤(48)은 검거 당시 출동한 경찰들에게 28㎝가량의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서울 성동경찰서 성수지구대 주재진 경사(40), 김성규 경위(57)가 지갑을 빼앗아 신분증을 확인하자, 김일곤은 복대에 감춰뒀던 흉기를 꺼내들었다. 김일곤의 위협에도 경찰은 갖고 있던 총기나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광주에서 김모 경장(30)이 흉기를 든 가정폭력사건 용의자 김모씨(33)에게 실탄을 발사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김씨는 흉기를 꺼내 자신의 목에 대고 자해할 것처럼 위협했다. 김 경장 등은 흉기를 버리라고 설득했으나 김씨는 서너 걸음 떨어져 있던 동거녀와 경찰관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김 경장이 발사한 총알은 김씨는 오른쪽 빗장뼈(쇄골)에 맞았다.


경찰이 적절한 총기 사용·관리와 관련해 '남용·과잉 진압'과 '범인검거·개인 신변보호'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총기 관리 뿐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른 사용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 한 발만 잘못 쏴도 '파면'…"특별한 경우 아니면 사용 안해"
일선 경찰들은 신중한 총기 사용·관리를 필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검거 과정에서 고지 의무와 발포 부위를 선별해야 하는 등의 절차가 '비현실적'이라는 어려움도 토로한다. 총기 사용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사망·부상 사고가 발생하면 징계 또는 파면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범인 검거 과정에서 총기사용은 제한적이다. 발포 전 반드시 '움직이면 쏜다' 등의 경고를 해야 하고, 다리 등 하체를 쏴 도주를 막는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경찰들은 2인 1조로 각각 실탄과 테이저건을 소지하고 근무한다.


한 일선 경찰은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다"며 "총기를 사용하다 사고라도 나면 결과적으로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워 가급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A모씨를 납치, 목 졸라 살해하고 차량 트렁크에 넣은 채 불 지른 이른바 '트렁크 살인'의 피의자 김일곤을 붙잡은 경찰들도 검거 당시 실탄과 테이저건을 소지하고 있었으나 맨손으로 범인을 검거했다.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범인과 거리가 가깝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경찰 '뜨거운 감자' 총기사용…"충분한 논의 필요"
경찰의 총기 관리소홀과 사고 등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지난달 25일 발생한 '구파발 총기사고'와 관련해 관리 소홀 등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서울 구파발 검문소에서 박모 경위(54)가 근무 중이던 실탄이 든 총으로 한 의경을 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경 3명이 빵을 먹는 것을 보고 "나만 빼고 너희끼리 빵을 먹고 있느냐"며 총을 쏘는 흉내를 내다가 실탄이 발사됐다.

왼쪽 가슴에 총을 맞은 박모 상경(23)은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했다. 박 경위는 "실탄이 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겼는데 발사됐다"고 설명했다. 박 경위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넘어갔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경찰의 무기관리지침을 어긴 사건"이라며 "무기 탄약 분리규칙도 어겼고 비무장 규정도 어겼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신명 경찰청장은 소홀한 총기 관리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강 청장은 "총기 오발사고 엄중조사하고 관련자 문책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전국적인 총기 관리 실태점검과 총기안전수칙 보완·교육 등 총기안전 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2011년 조현오 경찰청장이 일선 경찰관에게 위급상황 발생하면 총기 적극 사용하라고 지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총기 관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검거현장을 고려한 사용절차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총기 훈련을 비롯해 구체적인 행정적 지원이나 사법적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내 한 경찰학과 교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모두 져야 하기 때문에 일선 경찰이 검거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며 "총기사용과 관리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