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김씨 "2년전 신학원서 女반감 생겨"

'서초동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34)/ 사진=이동훈 기자

'서초동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 김모씨(34)의 피해망상이 2년 전 한 신학원에서 생활하면서 여성을 향한 반감으로 번졌다는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피해망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앓아왔지만 신학원 생활을 겪으면서 대상이 여성으로 좁혀졌다는 분석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는 김씨를 프로파일링한 결과 "김씨는 2003년부터 '누군가 나를 욕한다'는 피해망상을 보였다"며 "망상은 2014년 이후 '여성들이 나를 괴롭힌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은 "피해망상 대상이 '누군가'에서 '여성'으로 특정된 건 2년전 한 신학원을 다니면서부터"라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0년 개신교 계열의 한 신학원에 진학했다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했다. 학교를 나온 김씨가 신학원에 재입학한 때는 2014년이다.

면담과정에서 김씨는 "(재입학 당시) 나는 추진력을 갖고 일하려 했지만, 여학생들이 나에게 경쟁의식을 느껴 견제했다"고 진술했다. 구체적인 피해 경험은 말하지 못했고, 단순히 "여자들이 유독 나를 견제했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진술로 일관했다.

프로파일링을 진행한 경찰 관계자는 "조사 당시 김씨는 피해를 봤다는 본인 느낌과 그걸 진실이라고 믿는 확고한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이는 망상을 보이는 조현병 환자에게서 볼 수 있는 진술과 매우 유사한 패턴"이라고 설명했다. '내 느낌이 그렇기 때문에 확실하다'는 식이다.


김씨의 피해망상은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신질환 탓에 6차례, 총 19개월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증상은 올해 1월 병원에서 퇴원 후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서 악화됐다. 출근길 여성이 천천히 걸어가면 '나를 지각하게 하려는 의도'라 의심하고, 여성들이 담배꽁초를 버리면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려는 행동'이라 느낄 정도였다.

결국 김씨의 여성을 향한 반감이 범죄를 낳았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다만 반감을 만든 게 일반적인 사고 과정에서 나온 편견이 아닌 정신질환에서 비롯한 피해망상이라 특정집단에 대한 증오범죄로 보긴 힘들다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학적으로 증오·혐오범죄라 하면 특정집단을 향한 편견에 기인해 그 집단을 공격하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은 편견보다 특정집단에 대한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증상이 우선 작용, 반감을 만들고 공격성을 일으켰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망상으로 인한 반감은 증오범죄에 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범행의 계획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혐오범죄보다는 '묻지마 범죄'에 무게를 실었다. 관계자는 "범행 당시 김씨는 피해자를 보자마자 바로 공격했고, 장소 또한 본인이 판단해서 추린 게 아닌 평소 익숙한 곳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장갑이나 마스크를 끼려는 노력도 없고, 도주할 생각도 없이 출근하다 붙잡혔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계획이나 대비가 없는 '묻지마 범죄'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을 혐오하냐"는 질문에 대한 김씨의 진술도 '묻지마 범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김씨는 경찰 심리면담에서 "예전엔 여자에게 인기도 있고, 실제로 좋아한 여자도 있었다"며 "일반적인 여성에 대한 반감은 없고, 그저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죽을까봐 먼저 나섰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2차례 프로파일링을 마친 경찰은 분석 결과에 비춰 이번 범행을 '묻지마 범죄'로 잠정 결론지었다. 경찰은 이르면 오는 26일 김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