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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년 전 오늘… 재일교포 975명 실은 배, 北으로…

[역사 속 오늘]정치적 이해관계로 9만여명 북송… 인권 유린문제로 이어져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입력 : 2016.12.14 05:46|조회 : 7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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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 당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를 내거는 재일교포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북송 당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를 내거는 재일교포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57년 전 오늘… 재일교포 975명 실은 배, 北으로…
'재일교포의 귀국을 환영한다'(1958년 9월 8일. 북한 김일성의 성명)

김일성의 성명이 나온 뒤 약 3개월이 지난 57년 전 오늘(1959년 12월 14일) 975명의 재일교포가 일본 니가타(新潟)항을 떠나 북한으로 향했다. 이는 1984년까지 9만3339명의 재일교포와 가족들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거대한 항해의 시작이었다.

재일교포 북송 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1955년 당시 북한 외무상 남일이 "귀환하는 재일교포의 생활을 최대한 책임지겠다"고 밝히면서부터였다. 이어 1958년 김일성이 환영 성명까지 내놓으면서 재일교포 북송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59년 2월 일본 내각회의에서 ‘재일조선인 중 북조선 귀환희망자의 취급에 관한 건’이 의결됐다. 같은 해 8월 북한과 일본이 인도 캘커타에서 열린 적십자회의를 통해 '재일교포 북송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재일교포 북송은 정식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보내진 배경에는 북한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1950년대 중반 일본은 남한으로 귀국하지 못한 약 60만명의 재일교포를 내보낼 빌미를 찾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일본에서 정책적,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있었다.

마침 북한은 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대내적으로는 '천리마운동'에 필요한 노동력을 함께 채울 목적이었다. 결국 두 국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재일교포와 그 가족들은 북한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북송 재일교포들의 비참한 생활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5년 남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가 이루어진 뒤부터 북송교포들이 경제적 지원과 서신 교환 등 북한이 약속했던 기본적인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4년 극비문서에서 해제된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당시 일본의 집권당이 재일조선인을 사실상 '추방'하려 했다는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5년 5월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일북송피해가족협회 출범식 및 피해증언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스1
2015년 5월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재일북송피해가족협회 출범식 및 피해증언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스1

국가 간의 정치적 이해로 발생한 인권문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지난 5월에는 북송교포 중 남한으로 탈북한 피해자 50여명이 모인 '재일북송피해가족협회'가 결성됐다.

이들은 협회 결성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정권은 전후 일본 사회에서 핍박에 시달리던 재일교포들을 달콤한 말로 회유해 북한으로 불러들였지만 우리가 마주한 것은 인권 유린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로써 "재일교포의 귀국을 환영한다"는 과거 김일성의 성명은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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