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강국 대한민국, 비참했던 2016년의 악몽

글로벌 조선 '빅3'를 포함, 세계 최고의 건조능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업체들에게 올해는 악몽과 같았다. 지난해 회계상 손실을 대거 반영하며 '바닥을 쳤다'고 판단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사상 최악의 수주가뭄이 덮쳐왔다.

연이은 수주 가뭄은 잔량 감소와 함께 부분적 도크 폐쇄, 설비 및 자산 매각,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불러왔다. 올해 내내 이어진 해양플랜트 발주 취소 사태, 유가 50달러선 고착화 등은 내년 전망 역시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연이은 수주목표 하향조정에도 달성 실패
조선 빅3 중 삼성중공업 (9,740원 ▲270 +2.85%)은 올해 초 125억달러의 수주 목표를 내세우며 명예회복을 다짐했으나, 상반기에 실적이 0원이었다. 하반기 급하게 절반 가량인 53억달러로 목표를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인도 게일 LNG선 프로젝트 무산, 모잠비크 ENI 코랄 FLNG 투자 지연 등 기대했던 발주가 줄줄이 무산되는 악재를 맞이했다. 올해 최종 수주 실적은 5억2000만달러로, 연초 목표 대비 4% 수준에 불과하다.

대우조선해양 (32,900원 ▲300 +0.92%) 역시 연초 수주목표 108억달러에서 상반기 62억달러로 목표를 한차례 낮췄다. 대우조선은 수주 가뭄이 이어지자 목표를 35억달러로 또 한번 줄이는 강수를 뒀으나 총 수주는 15억5000만달러에 그쳤다.


업계 맏형 현대중공업 (131,100원 ▲3,800 +2.99%)(현대삼호중공업 포함) 조선해양부문은 연초 157억달러의 계획을 세웠으나 발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자 지난달 목표치를 49억달러로 대폭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 올해 수주실적 44억달러로 수정한 목표치 달성에도 실패했다.

빅3 외에도 현대미포조선 (72,800원 ▲2,200 +3.12%)이 연초 목표 30억달러 중 총 9억달러를 수주하는 등 한진중공업 (3,180원 ▲120 +3.92%), 성동조선해양 등 중견 조선업체들도 수주 부진에 시달렸다. STX조선해양, SPP조선, 대한조선은 신규수주가 한 건도 없었다.

◇수주가뭄 속 피말리는 '버티기' 돌입
조선업계가 2014~2015년의 대규모 손실 계상에 이어 올해 수주 절벽에 직면하자 정부가 칼을 대기 시작했다. 정부는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이름 아래 국책 금융기관 등을 이용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채권은행들은 각 업체마다 자구계획안을 요구하며 몸집 줄이기를 주문했다. 올해 조선 빅3에서 떠난 정규직만 7000여명에 달한다. 비정규직은 2만~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울산 해양2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내년도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도 고려중이다. 각 사업부 각자도생을 위해 조선·해양,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 그린에너지, 서비스 등 6개사로 쪼개는 사업재편 방안을 내년 4월부터 시행한다. 생산직 희망퇴직을 사상 최초로 진행하기도 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약 1500명 규모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한편 일부 거제삼성호텔, 아파트 사택 등을 매각하며 생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1조1409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수주가뭄 속 유동성 확보에 주력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서울 본사 사옥과 핵심 계열사, 미래 연구 역량을 결집할 예정이던 마곡산업단지 부지 등 '전 자산'을 매각 대상에 놓고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전세계를 돌며 그동안 신뢰 관계를 맺은 선주들에게 호소한 끝에 선박대금 6억달러를 조기 수령해왔다.

◇불안한 국제유가, 내년도 '고난의 행군'
올해 내내 조선업체들을 괴롭혔던 것은 저유가 기조였다. 해양플랜트 발주 실종을 넘어서, 수년 전 발주한 선주사들이 계약 취소를 연이어 통보했다. 최근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감산에 합의했지만 국제 유가는 배럴당 50달러선에서 보합세를 거듭하고 있다.

조선 빅3가 최근 2년간 발주처로부터 인도를 거부 당하거나 인도 시점을 늦춘 해양플랜트는 각 업체당 5~8기에 달한다. 선주사들은 고유가 시기 발주한 플랜트를 현재 인도 받아 채산성을 맞출 수 없게 되자 소소한 주문 변경 등으로 트집을 잡아 책임을 국내 조선업체들에게 지우고 있다.

해양플랜트 인도 지연은 조선업체들에게 더 큰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선박 및 플랜트 인도 시점에 대금의 대부분을 받는 '헤비테일' 방식 계약을 맺은 경우, 최종 인도가 지연되면서 대금 유입 역시 미뤄지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오일 메이저들이 지속적 채산성 향상 노력으로 프로젝트 손익분기 유가를 낮춰가는 점은 고무적이다. 스타토일, 로열더치셸 등은 손익분기 유가를 40달러대 후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해 그동안 잠정 중단한 프로젝트들을 내년에 재개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70달러선까지 올라간다면 인도 거부 당한 물량의 재매각과 함께 신조 발주 시장도 살아날 것"이라며 "다만 OPEC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약적 유가 상승이 안 보인다는 점에서 내년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