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경이로운 세제개혁' 추진에 美기업들 '內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AFPBBNews=뉴스1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세제개혁 바람에 미국 기업 지형이 양분됐다. 수출업계는 세제개혁을 반기지만 수입업계는 반발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 두 진영이 이미 워싱턴 정가를 상대로 거센 로비전에 나섰다며 이에 따른 분열상이 '내전'을 방불케 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항공업계 대표들을 만나 "2~3주 안에 세금과 관련해 '경이로운'(phenomenal) 뭔가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기업들의 세 부담을 대폭 낮추는 방안이 될 전망이다. 그는 현재 35%인 법인세를 15%까지 낮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멕시코 등에서 수입하는 제품엔 20%의 국경세를 물리겠다고도 했다.

하원 공화당의 세제개혁안은 훨씬 구체적이다. 지난해 6월 마련됐지만 최근에야 주목받게 된 이 방안은 원래 미국 기업들이 조세 부담을 피하려고 해외로 법인을 옮기는 '법인 자리바꿈'(corporate inversion) 관행을 막기 위한 것이다. 법인세율을 20%로 낮추고 수출과 해외수익엔 세금을 물리지 않는 대신 수입품에 20%의 '국경조정세'를 부과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하원 세입위원장으로 이 세제개혁안을 만든 케빈 브래디 의원은 "어디서, 누가 생산하든 관계 없이 미국에서 소비되면 같은 세율(20%)로 세금을 매긴다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서로 닮은꼴인 트럼프와 하원의 세제개혁안에 미국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수출기업들은 환호하는 분위기다. 다우케미컬 제너럴일렉트릭(GE) 보잉 캐터필러 화이자 같은 기업들이 '아메리칸 메이드'(American Made)라는 이름의 연대를 구축해 하원의 세제개혁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들은 미국에서 제품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보다 수입품에 더 낮은 세율을 매기는 왜곡된 관행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수출기업들은 수출과 해외수익에 면세 혜택이 적용되면 수출가격 경쟁력을 더 높이고 해외에 쌓아둔 자금을 들여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기업들은 35%의 법인세 부담을 피하려고 현재 1조2000억달러에 이르는 해외수익을 들여오지 않고 있다.

반면 월마트 타깃 베스트바이 나이키 갭 등 수입 비중이 절대적인 소매업체들은 세제개혁안에 반발해 지난달 반대 로비에 나섰다. 이들은 국경조정세로 수입세 부담이 커지면 미국에서 파는 최종제품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는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경조정세가 궁극적으로 '소비자세'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미소매업협회(NRF) 로비스트인 데이비드 프렌치는 세제개혁안대로면 소매업계의 실효세율이 수익의 100%로 치솟기 쉽다며 일부는 200%, 심지어 300%의 세율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고급 백화점 삭스피프스애비뉴의 CEO(최고경영자)를 지낸 스티븐 사도브는 "수십년간 이어진 아웃소싱을 반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국경조정세가 소매업계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적인 파장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마이클 데버루 영국 옥스퍼드대 기업세제센터 소장은 "미국의 세제개혁이 글로벌 무역·투자·공급망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경 간 세제에 1920년대 이후 최대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미국 기업의 조세회피처 역할을 해온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이 미국의 세제개혁으로 피해를 입으면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봤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점쳐진다. FT는 유럽연합(EU)이 이미 미국의 국경조정세 도입 움직임에 WTO 제소로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WTO 역사상 최대 소송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세제개혁안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한창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세금재단은 국경조정세에 따른 추가 세수가 10년간 약 1조1000억달러에 달해 다른 감세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연방정부 부채가 10년간 2조400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하원의 세제개혁안에 흥미를 보였지만 논란이 커지면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지난달 세제개혁안을 오는 8월까지 제출하고 싶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연말까지 더 지켜 볼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