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로 본 김정남 피살 현장…'시차를 둔 독극물 효과'

/영상=중국 인민일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피습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힌 동영상이 공개됐다.


20일 외신들이 공개한 이 영상은 공항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영상은 13일 오전 밝은 색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김정남이 검정색 백팩을 오른쪽 어깨에 매고 인파가 몰린 공항의 중앙홀로 들어가는 뒷 모습으로 시작한다.

김정남은 이날 오전 10시에 마카오로 떠나는 비행기에 탈 예정이었다. 그는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출발 안내 전광판을 확인한 뒤 자동 발권기 쪽으로 향했다. 이때 두 여성 용의자의 모습도 화면에 잡혔다. 말레이시아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는 도안 티 흐엉(28)과 시티 아이샤(25)다. 둘은 체포 당시 각각 베트남, 인도네시아 여권을 갖고 있었다.

아이샤는 김정남 왼쪽으로, 'LOL'이라 쓰여진 흰색 티셔츠를 입은 도안은 김정남 뒤로 접근했다. 독극물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천을 양손에 붙잡고 있던 도안은 김정남의 바로 뒤에서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갖다 댔다.


주목할 건 김정남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범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워낙 짧은 시간에 갑자기 당한 탓인지 김정남도 비명을 지른다든지 적극적인 저항을 할 겨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각도에서 찍힌 화면을 보면 도안은 뒤에서 두 손으로 김정남의 얼굴을 감쌌다. 이때 아이샤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 듯하다. 김정남이 약간 저항하는 듯 했지만 도안과 접촉한 시간은 약 2초에 불과했다. 이후 아이샤와 도안은 정반대 방향으로 사라졌고 김정남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이어진 영상에서 김정남은 공항 직원들에게 멀쩡히 걸어가 말을 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이후 공항 여성 직원이 경찰들에게 김정남을 안내했고, 그는 경찰들에게 얼굴을 공격당했다는 듯한 몸짓을 하며 설명했다. 이때 김정남은 오른쪽 어깨에 그대로 백팩을 매고 있었고 왼손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피습을 당한 지 일정 시간이 지났어도 의식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화면에서도 김정남은 백팩을 매고 휴대전화를 쥔 채 안내를 받으며 진료소로 걸어서 이동한다.

김정남은 그러나 진료소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 진료소 직원들이 입구에서 허리를 굽혀 김정남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다음 화면에서는 재킷을 벗은 김정남이 정신을 잃고 쇼파에 쓰러져 있다. 김정남은 구급차편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도안과 아이샤 외에 북한 국적자인 리정철과 인도네시아 남성 1명 등 김정남 피살사건과 관련해 모두 4명의 용의자를 체포해 조사 중이다. 이들은 모두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도안과 아이샤는 경찰에서 장난 영상을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누군가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공항이 원래 붐비는 곳이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된 데다 화면에서처럼 범행 당일에도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는 점에서 김정남을 표적으로 삼은 이들이 굳이 공항을 피살 장소로 택한 이유는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한편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북한 국적자 4명을 더 추적 중인데 이들이 이미 두바이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말레이시아 매체인 더스타 등이 소식통을 인용해 20일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