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는 규제 안 풀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식민지 된다"

'금융의 미래' 좌담회 현장. 왼쪽부터 김석영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 김학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핀테크지원센터장), 한준성 KEB하나은행 부행장, 이정훈 핑거 상무이사. /사진=임성균 기자

정보통신기술이 사회 전반에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빅데이터는 원유에 비유된다. 과거 산업혁명시대 때 원유를 잘 사용한 국가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위상이 바뀔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 만큼 금융권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분 아래 빅데이터 활용을 각종 규제로 제한하게 되면 다가오는 시대에 중국 등 빅데이터를 주도하는 국가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시대를 주도하려면 개인정보보호 등 현안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를 바라본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머니투데이가 창간 16주년을 맞아 기획한 ‘2025 금융의 미래-새로운 금융이 온다’를 마무리하며 지난 19일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핀테크지원센터장), 김학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 한준성 KEB하나은행 부행장, 김석영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 이정훈 핑거(핀테크 컨설팅회사) 상무가 좌담회에 참석해 금융산업의 변화와 대응방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빅데이터, 활용 늦어지면 해외기업들의 식민지로 전락…조속한 사회적 합의로 빅데이터 생산국 돼야"

◇규제에 매여선 안 돼…시기 놓치면 금융 식민지 전락=현재 빅데이터 활용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개인정보보호다. 빅데이터로 공유된 정보가 유출될 경우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금융당국이 빅데이터 관련 규제 완화에 신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활용은 전 세계적으로 이미 방향성이 정해진 문제라며 미래를 바라보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유신 교수는 “빅데이터는 이미 활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개인정보보호 문제 등 현안에 매여 있어서는 해외 기업들이 국내로 치고 들어올 때 막을 길이 없다”며 “국내 기업들이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처럼 빅데이터를 전향적으로 활용하는 해외 기업들의 식민지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빅데이터 활용이 더 늦어지면 기술의 격차가 극복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란 관측이다. 빅데이터 기술은 단순히 정보의 수집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집이 끝나면 세심한 선별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최초 수집 정보의 80%가 다시 버려진다. 한준성 부행장은 “데이터 선별은 굉장히 많은 경험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며 “알리바바는 이런 작업을 10년 동안 했고 한국은 지금 시작하려는 단계니 이미 수준차가 심하게 난다”고 말했다.

한준성 KEB하나은행 부행장. "빅데이터 활용, 늦어질수록 기술 격차 따라잡기 힘들어…현 규제 프로세스가 미래대응에 적절한지 고민 필요"

개인정보보호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변화된 환경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석영 실장은 “개인정보보호를 비롯해 소비자보호에 대한 합의는 있지만 무게 중심이 소비자보호 일변도서 소비자편익 쪽으로 좀 이동하는 것 같다”며 “일례가 공인인증서를 없애자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학수 국장은 “소비자보호에 방점은 찍히는데 무게중심은 자꾸 바뀐다”며 “빅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결국 어떤 사회적 합의로 끌어주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낡은 규제가 혁신을 막는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이정훈 상무는 “핀테크업체를 설립할 때 기준은 기존 금융에서 불편했던 것을 개선해보자는 것과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보자는 것인데 기존 금융회사와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를 핀테크업체에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서로 기준이 안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핀테크업체들이 규제의 벽을 넘어가지 못하면 혁신의 선순환구조가 막혀 버리고 핀테크업체들은 활로가 막혀 버린다”고 말했다.

김학수 국장은 “랜섬웨어 공격이 기승을 부릴 때 한국은 강력한 망분리 규제로 별다른 피해가 없었는데 이 규제가 보안 등에 대한 투자를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망분리하면 해킹을 막을 수 있는데 뭐하러 투자를 하

김석영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 "AI, 인력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보험 기능하는 업체 늘면 전문직 일자리 더 창출될 것"

냐는 인식이 있을 수도 있어 20, 30년 후에도 좋은 규제냐 생각해보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유신 교수는 “규제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논의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유연하게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규제의 장단점이 뭐고 산업경쟁력에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 제대로 짚어야 사회적 합의도 수월해진다”며 “합의를 얼마나 조속히 도출할 수 있느냐에 따라 4차 산업혁명시대의 원유인 빅데이터 생산국이 될 수도 있고 수입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혁신에도 금융산업 일자리 감소 크지 않아=핀테크산업이 고도화할수록 기존 금융산업의 일자리가 빠르게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뱅크(은행) 없이도 뱅킹(은행업)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면서 기존 은행 점포의 은행원이 필요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융산업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일자리 감소가 우려만큼 심각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공지능(AI) 등 기술이 아직 인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뿐더러 업종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금융권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석영 실장은 “과거에는 계리사를 보험사만 채용했는데 퇴직연금을 증권사에서 다루면서 증권사들도 계리사를 채용하기 시작했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보험 기능 자체를 수행하는 산업이 나타나면 보험인력이 그쪽으로 더 퍼지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더 창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정유신 교수는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으로 감원 우려가 많지만 아직은 인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며 “로보어드바이저의 증가가 인력 감소로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미국의 경우 로보어드바이저 운용은 매년 2배씩 증가하는 추세지만 자산운용 인력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며 “로보어드바이저와 사람 인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석영 실장도 “현재 인공지능(AI) 도입은 기존 인력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지 인력을 완벽히 대체하겠다는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최근 AI를 도입한 한 일본 보험사에 대해 인력 수십명이 해고됐다는 식으로 뉴스가 나왔는데 실제로는 이미 직원들이 퇴직하는 단계였다”며 “오히려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AI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학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br>"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해야<br>…4차산업혁명의 본질은 소비자혁명"

이정훈 상무는 “첨단 IT(정보기술)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방안이 마련되면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많은 직업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련해 김학수 국장은 “미국에는 신용평가업, 개인계좌관리업이라는 직종이 있다”며 빅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정보가 널리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 이런 개인정보에 기반한 새 업종이 등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취약계층과 관련해서도 일자리 창출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준성 부행장은 “영국 바클레이즈의 경우 ‘디지털 이글’이라고 해서 디지털에 먼저 익숙해진 고령층 퇴직자가 다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디지털을 교육하는 제도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정훈 상무는 “고령층을 위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핀테크업체도 있다”며 “디지털 취약계층이 오히려 핀테크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소비자혁명…소비자 편익 커질 것=전문가들은 빅데이터, 바이오인증 등 핀테크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소비자 편익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전보다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훈 핑거 상무이사. "개발도상국에서도 데이터 흐름에 유연성 보여…핀테크사업 영위할 수 있는 촉진책 마련돼야"

정유신 교수는 “스마트폰 기술 덕분에 금융이 손안에 들어왔다”며 “금융과 IT(정보기술)를 분리할 수 없게 되면서 소비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핀테크업체들이 금융업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성 부행장도 “기존 금융회사를 대체할만한 핀테크업체들에 대한 투자가 점차 늘고 있다”며 “기업금융분야는 아직 대형 금융회사 중심의 현 체제가 바뀌지 않고 있지만 소매금융은 파괴적인 변화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그런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4차 산업혁명시대 맞는 규제 환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환경이 개선될수록 그 수혜는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정훈 상무는 “미래를 기준으로 보는 핀테크업체들에 현재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사항을 적용하면 출발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핀테크업체들이 더 편안하게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촉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성 부행장은 “현재 갖춰진 규제 프로세스가 미래에 대비하는데 얼마나 적절한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업계의 이같은 시각에 공감하지만 규제 환경을 쉽사리 바꾸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학수 국장은 “기술의 발전은 결국 소비자를 위해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4차 산업혁명은 본질적으로 소비자 혁명”이라면서도 “소비자보호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플레이어들을 어떤 법 테두리 안에 둬야 하는지 판단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지금으로선 테스트베드를 활용해 새로운 금융상품이나 서비스가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한 후 제도화시키는데 가장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