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백기사' 나선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GUESS'

"증인이 (삼성생명의)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 시나리오라고 했는데 그것을 알 수 있는 사건이나 표지가 있는지?"(특검 측)
"그룹 전체의 조직체제를 개편하는 것은 미래전략실이다. 증거를 대라고 하면 댈 수 없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아는 팩트(사실)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그것이(국민 모두가 안다고 하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부분을 재판하고 있는 것이다"(재판부)


지난 14일 이 부회장 등 공판에서 특검 측 주신문이 끝나갈 무렵 증인으로 나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특검 측, 재판부가 나눈 이 대화 속에는 이날의 공방전이 열리게 된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있다.

김 위원장은 수십년간 재벌 지배구조를 비판해온 학자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 특검 측의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논리를 완성하는데 상당한 조언을 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당일 7시간 넘게 김 위원장의 장황한 의견이 개진됐지만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이 왜 경영 승계 시나리오에 초점이 맞춰졌는지에 똑떨어지게 설명하는 설득력은 부족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판단은 모두 승계와 관련 있다고 의심해야 하나"=특검 측은 이 부회장 등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할 때 뇌물을 준 목적이 될 현안을 '승계작업'이라고 봤다. 승계작업에 대한 특검 측과 변호인단의 시각은 엇갈린다.

특검 측은 이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최소한의 자금을 들여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승계작업이라고 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하 삼성 합병)이나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은 모두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는 의혹이다.

이에 반해 변호인단은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및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인수해 이 부회장이 이미 그룹 지배력을 갖춘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특검 측의 논리대로라면 삼성 합병이나 금융지주회사 추진 등이 이 부회장의 지분율 추가 확보에 영향을 끼쳤어야 하지만 실제 결과는 이와 달랐다는 점이 재판에서 줄곧 지적되고 있다.

변호인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지분율)은 0.1%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도 "수치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지배구조가 단순화돼(순환출자 등 해소로 삼성전자까지 이르는 고리 개수가 줄어) 효과 측면에서 지배력이 강화됐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변호인단은 또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던 회사가 제일모직에서 통합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는데 이 부회장의 정점 회사에 대한 지분율은 기존 23.2%에서 합병 후 16.5%로 오히려 감소해 전체 그림에서 보자면 그룹 지배력이 오히려 약화됐다는 반박이다.

경영승계의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수치'로 접근하지 않고 김 위원장이 말처럼 '절차'로 접근하다 보니 이 부회장이 추진하는 모든 경영현안은 승계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기승전결'에서 중간쯤에 와 있다"며 "현재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상 '선택과 집중'이란 슬로건 아래 계열사 매각 및 상장 등을 하고 출자고리 단순화를 해 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총수가 시장으로부터 정당성을 존중받는 것까지가 제대로 된 승계"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재판부는 "그럼 증인은 승계작업이란 게 단순히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영리더십을 보강하거나 확보하거나 강화시키는 그것까지 포함시킨다는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총수들이 그룹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카리스마"라며 "지분율이 높다고 단순히 생기는 게 아닌데다 선친이 안했던 사업에서 성공함으로써 또 다른 경영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라는 정성적인 답변을 내놨다.

김 위원장은 "승계 과정에 관한 지배구조 개편은 미전실에서 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각 계열사에서 공식 발표하기 전에 미래전략실에서 사안을 미리 알려왔다"고 답해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경우는 사업재편 성격이 더 강한 게 있고 어떤 경우는 승계와 관련한 게 더 중요한 게 있었을 것"이라며 "미전실은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서 전체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미래전략실의 역할에 대해 모호한 평가를 내놨다.

◇김상조 위원장에 대한 믿음 강한 특검…삼성 "회사가 한 사람 주장만으로 움직이진 않아"=특검 측이 기소 논리에 있어 얼마나 김 위원장에 기대었는지는 김 위원장이 증인으로 나서지 않은 다른 공판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8일 공판에서 특검 측은 증인으로 나선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을 대상으로 수차례 "김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방 부사장은 "자본확충을 위해 금융지주회사 전환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본인"이라며 "(특검 측 지적은) 한 학자의 의견일 뿐 회사가 학자들의 주장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삼성그룹이 이 부회장,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4인 집단 지도체제로 움직였다는 김 위원장의 증언도 반박됐다.

김종중 전 사장은 지난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가 "제 이야기를 오해한 것"이라며 "이 부회장은 미전실 임원도 아니고 미래전략실에서 재직하던 중 4인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그룹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었는지는 오히려 2015년 7월, 삼성 합병을 앞두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과 이 부회장이 직접 면담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에 잘 나타나고 있다.

당시 면담 후 동석했던 국민연금 실무진이 작성한 'CEO 단독면담 결과'란 제목의 문건에 따르면 이 부회장 등 삼성 측 관계자들은 "삼성그룹은 알다시피 지분구조가 복잡한 회사여서 이건희 회장 때부터 순환출자를 정리하자고 제안드린 바 있다"며 "순환출자 금지 법안이 도입된 이후 지분구조를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순환출자고리는 3년 전 86개였으나 현재까지 10여 개로 정리됐다"며 "이번에 합병하면 7개로, 2016년 말 0개가 목표"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은 또 향후 경영 방침에 있어 김 위원장의 조언도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당시 "(지배구조 개편의 구체적 방향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인위적으로 장악하거나 혹은 다음 세대로 넘겨주기 위한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룹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 또한 다 합쳐도 17%밖에 되지 않는데 이제는 경영을 잘해야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