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레드라인' 첫 언급하며 北경고…'전쟁불용' 재확인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레드라인(Red line·포용의 한계선)'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시점이라고 처음 규정했다.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레드라인'의 내용을 공론화한 것은 북한의 추가도발을 억제하려는 경고 차원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생각하는 레드라인'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북한이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서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북한이 점점 그 레드라인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이 단계에서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함께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에서 사상 유례없는 강도높은 제재조치를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만약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더더욱 강도 높은 제재조치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결국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위험한 도박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정상이 대북 레드라인을 규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매우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ICBM급 '화성-14형'을 처음 발사한 지난달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총리를 만나 "북한이 한미 정상이 협의한 평화적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호응하지 않고 레드라인을 넘어설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지 알 수가 없다"고 처음 언급했다.

레드라인은 미국의 선제타격 등 군사적 옵션이 가능해지는 단계로 문 대통령의 이 발언에 청와대는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튿날 통일부 정례브리핑에서 이덕행 대변인은 "레드라인은 공개하면 레드라인이 아니다. 특별한 레드라인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레드라인의 임계치에 왔다"고 유보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레드라인의 기준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는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엇박자'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논란 끝에 문 대통령이 다시 '레드라인'을 입에 올린 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 차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레드라인 공개는 외교관례상 이례적이라는 지적에 "대통령은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엄중성, 시급성에 대한 심각한 인식에 따라 이 같은 언급을 하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대응책이 완성된 상태에서 언급한 것이냐는 질문엔 "기자회견 말씀 그대로"라며 즉답을 피했다.

북한의 ICBM 실전배치는 우리 안보와 직접 연관성은 약하다는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전세계에 대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 해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레드라인이나 레드론 설정은 강대국의 전유물로 레드라인 공개는 군사적 대응수단이 있을 때 가능한 얘기"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ICBM이 한반도를 뛰어넘어 미국과 전세계를 위협한다는 원칙적인 수준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지난 8·15 경축사에 이어 '전쟁 불용'과 '북핵 불용'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더라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도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바깥이라면 몰라도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만큼은 우리 한국이 결정해야 하고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설령 미국이 한반도 바깥에서 군사적 행동을 취하더라도 그것이 남북관계에 긴장을 높일 우려가 있을 경우 한국과도 충분히 협의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대화의 여건이 갖춰지고, 그 여건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대북특사를 처음 언급했다. 다만 "대화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는 담보가 있어야 한다"며 "적어도 북한이 추가도발을 멈춰야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전제조건을 분명히 했다.

양 교수는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지지를 재확인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며 "미측에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한국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존중해 달라, 그래야만 한미동맹을 지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함으로써 94년도 영변핵시설 타격론이 나왔을 때처럼 한반도의 운명을 미국 손에 맡기는 위기국면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