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핵위협 커졌는데… 韓·美동맹 흔드는 트럼프

지난 6월 30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북한이 도발 수위를 계속 높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강도를 약화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거론하거나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행위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이 한반도 안정은커녕 김정은 정권에게만 이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북한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한·미 FTA 폐기는 대북 공조를 위한 한국과 미국의 동맹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날 사설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한·미 FTA 폐기를 거론해 김정은에게 선물을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한·미 FTA 폐기를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수 시간 뒤 북한은 함경북도 풍계리에서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어 조선중앙TV 중대발표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하버드대학교 벨퍼센터의 존 울프스털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한·미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 한다"면서 "지금은 동맹국과 경제전쟁을 벌이기 최악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한·미 FTA 폐지가 양국 관계를 망치려는 북한의 목표에 도움이 될 뿐이라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문제 해결을 위해 외교적 영향력을 희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으로 멕시코, 캐나다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직후에도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 전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임자들은 안보와 무역 문제를 분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연계해 자신을 궁지로 몰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는 전날 오후 트위터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며 "한국의 유화책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비판은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실제 미국의 대북 '압박과 관여' 접근을 적극 지지해왔고,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취한 어떤 것도 유화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일본 도쿄 거리의 한 전광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얼굴이 나오고 있다. 이날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긴급 전화통화를 하는 등 대북 공조를 강화했다. /AFPBBNews=뉴스1

트럼프 대통령은 행동으로도 한국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세 차례 통화했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한 번 의견을 나누는 데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 미국 대사도 아직 임명하지 않았다. 주일 대사와 주중 대사가 이미 정해진 것과 대비된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활동 중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언제 공식 임명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에서는 '코리아 패싱'(한국 소외) 우려가 커졌다. 미국 싱트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의 트로이 스탠가론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한·미 FTA를 폐기한다면 한국에서 '미국은 파트너'라는 생각이 약해질 것"이라며 "트럼프는 대북 공조를 이어온 동맹인 한국을 적국보다 더 심하게 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이사회 의장은 "한·미 FTA 폐기 발언 등으로 인해 분위기가 심각하게 나빠지는 것 같다"며 "미국 기업에 대한 회계 감사가 강화되고 있으며 FTA 폐기는 이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