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경력 소방관, 제천화재 초기대응 정면 비판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할 당시 CCTV(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 /사진제공=뉴스1

27년 경력의 전직 소방관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 대한 소방당국의 초기대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통유리를 뒤늦게 깨는 등 미숙하게 대처한 탓에 2층 사우나 시설에서만 20명이 사망했다는 지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소방당국의 해명은 변명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직 소방관의 여동생 고(故) 이모씨(58)는 문제의 사우나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본지 12월22일 前소방관, 제천참사에 여동생 잃어 "초기대응 잘못" 보도 참고)

23일 오전 충북 제천시 명지병원에서 만난 27년 경력의 전직 서울 지역 소방관 이모씨(60)는 전날 소방당국이 "초기에 통유리를 깨면 안 되는 상황이어서 뒤늦게 깬 것처럼 오해가 생겼다"고 한 데 반박했다. 이씨는 현장 지휘관이 판단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소방당국은 현장에 도착한 직후 건물 1층 인근에 있던 LPG 저장탱크(2톤 용량)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1층 주차장 안 불을 집중 진화하느라 2층 등의 통유리를 일찍 깰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씨는 "사람이 죽고 있는데 불만 끄나"라며 "진화작업과 유리 깨기를 함께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유리 깨기를 할 구조대원이 다른 지역 사건을 처리하느라 늦게 도착했다는 해명에 대해 이씨는 "구조대원이 없더라도 통유리를 깰 수 있다. 현장의 고가차로 그냥 툭툭 받기만 해도 유리가 순식간에 다 깨진다"고 반박했다.

통유리를 깨면 백드래프트(건물 내 화재 시 갑자기 산소가 유입되면 폭발이 일어나는 현상)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해명에 대해선 "그건 연소층(불에 타고 있는 층)만 해당되는 이야기"라며 "2층에는 (불을 제외하고) 연기만 들어갔다"고 말했다.

다른 유족들 사이에서도 건물 유리창을 깨지 않은 소방당국 대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이날 오전 경찰서장, 소방서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유족을 상대로 진행한 브리핑에서 류건덕 유족 대표는 "유리를 깨는 데 1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째서 출동 1시간 반 이후에 유리를 깬거냐"며 "유리창을 2개만 더 깨줬어도 여자들이 다 살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유족 윤모씨(53)도 "소방서장은 LPG 가스통과 연기 때문에 깰 수 없는 상황이라고만 이야기 했다"며 "제가 현장에서 2층 연기만 빼달라고 그렇게 요청을 했는데 핑계만 댔다"고 울분을 토했다.
소방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소방당국이 잘못했다는 의견과 이해된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당시 소방대원들이 2층 통유리를 깨고 진입했다가 성희롱 등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걱정을 했을 수 있다"며 "소방관들에 대한 면책조항이 너무 적은 상황에서 이 같은 우려가 유리 깨기를 지연시킨 근본적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김광태 신성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정확한 사건 경위가 조사된 뒤에야 명확히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견 표명을 유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