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판 '런던스모그' 갇힌 공기에…반복 예고

서울지역 미세먼지 농도가 '보통' 등급인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 건물에서 바라본 청와대와 경복궁 일대가 선명하다.(왼쪽)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보였던 전날 같은 장소에서 바라본 모습/사진=이기범 기자

최근 수도권을 강타한 초미세먼지 양상이 '런던 스모그'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기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못하고 공기 이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면서 국내에서 발생한 각종 오염물질이 대기 질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중국 등에서 유입된 오염물질 영향이 컸던 기존 사례와는 다르다. 연구진은 3~4일간 초미세먼지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는 상황이 또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기후변화로 대기정체 등 대기 흐름이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19일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나흘간(14일~18일) 발생한 초미세먼지 고농도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시간평균농도가 최고 105㎍/㎥, 최저 35㎍/㎥였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50㎍/㎥을 넘으면 '나쁨' 단계로 분류된다.

서울시는 이달 15일, 17일, 18일 등 총 세차례에 걸쳐 서울형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했다. 조치를 발령하지 않은 16일 역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일평균 85㎍/㎥, 최고 106㎍/㎥으로 측정됐다.

이 기간(16일~18일) 초미세먼지 주성분인 질산염의 농도는 22.6㎍/㎥으로 직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질산염은 주로 자동차와 난방 등 연소과정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번 고농도 초미세먼지 발생에 국내 요인이 컸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정권 보건환경연구원장은 "또 다른 초미세먼지 성분인 황산염은 상대적으로 낮은 3.6배가 증가했다"며 "황산염은 주로 외부 유입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이 발생한 주요 배경은 '대기정체'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파 원인이었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면서 초미세먼지가 심각해지기 직전(13일) 중국 내륙에서 고농도 오염물질이 유입된 다음날 대기 정체가 시작됐다.

대기 정체로 대기 혼합고도가 약 503m에서 형성됐다. 대기혼합고도 아래 공기는 더 위로 올라가는 순환활동을 하지 못한다. 결국 3, 4일간 지면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정체하면서 초미세먼지가 대폭 증가한 셈이다.

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런던 스모그와 유사한 이례적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하루에 몇십배씩 초미세먼지 농도가 오르다가 대기정체가 풀리면 곧바로 정상이 되는 유형을 말한 것이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기존 국내 초미세먼지 상황과는 유형이 달랐다는 것이 연구원 설명이다

런던 스모그(매연과 안개의 합성어)는 영국 런던에서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1952년 대기오염으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런던은 해양성 기후로 대기 흐름이 빠른 편인데 당시에는 공기가 전혀 이동하지 않아 걸어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시야 확보도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은 "최근 2년간 오존주의보 발령 횟수가 급증했고 겨울에는 삼한사온이 사라지고 대기가 정체되는 등 기후변화와 연결되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대기 정체로 이번처럼 국내에서 발생한 오염물질이 흘러가지 못하고 갇혀 대기질을 악화시키는 상황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번 연구원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자동차 사용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단지가 없는 서울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물질의 가장 큰 원인은 자동차와 난방이라고 본 것이다. 이를 두고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무료' 조치가 논란을 빚자 초미세먼지 원인의 상당 부분이 국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은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황보연 기후환경본부장은 "강제 2부제 시행이 필요하다고 보고 대중교통 무료 정책 등으로 가능한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3차례 비상저감조치 발령에도 교통량 감소율이 만족할 수준은 못됐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인천시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