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갈등에 끊긴 한·일 통화스와프, 3년 만에 재개되나

'제21차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일 저녁 마닐라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현안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년 전 외교 갈등을 계기로 중단됐던 한·일 통화스와프의 재개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치 논리를 떠나 중앙은행간 경제 협력 차원에서 통화스와프 문제를 논의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 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본과 통화스와프 재개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라며 "앞으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제21차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찾았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이다. 국가간 마이너스 통장 계약으로도 불리며, 외환 위기 때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한국은 지난해 중국과 계약을 연장하고 캐나다, 스위스 등 기축통화국과 신규 협정을 맺는 등 통화스와프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한·일은 2001년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지만 2015년 2월 연장 없이 계약이 끝났다. 독도 문제 등 외교 갈등이 불거진 때다. 양국은 2016년 8월 재개 협상을 시작하기로 선언했지만 지난해 1월 소녀상 문제를 이유로 일본이 협상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만약 일본과 협상에 성공한다면, 한국은 세계 6대 기축통화국 중 세 곳과 통화스와프를 맺게 된다.


이 총재는 "한·일 통화스와프는 정치적 이유로 연장이 안됐고 논의도 제대로 못했다"며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의 경제 협력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게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과 일본이 통화스와프를 재개한다면 정치적 이유로 중단돼있는 한·일 통화스와프도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오는 9일 일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 문제로 중단됐던 통화스와프를 재개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를 언급한 것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이 한창일 때 한·중 통화스와프도 정치적 논의를 배제하고 연장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의 고려 요인으로 "물가보다는 소비, 투자, 고용, 수출 등 실물지표를 더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통화정책에 있어선 6개월 또는 1년 후의 물가가 중요하다"며 "최근 물가가 1% 초중반 수준이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중기목표수준(2%)에 크게 못 미치는 낮은 수준이어서 한은의 금리인상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반박한 것으로 읽힌다. 금통위 내에서도 물가 지표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이 총재가 실물경기의 개선세만 확인된다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다만 그는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1.6%)이 확대된 데 대해선 "기존에 봤던 것과 어긋나지 않다"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총재는 금융불균형 누적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는 올려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3%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물가도 2%대로 수렴할 경우 (현 금리 수준을) 그대로 끌고 가면 금융불균형이 커진다"며 "금융불균형이 당장은 문제가 안 되지만 1~2년이 쌓이면 이 때 느끼는 부담은 지금보다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