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장은 유해한 곳일까?

당구장 난투극의 모습을 담은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일부. 당구장은 과거 난투극과 일탈의 장소로 인식돼왔다./사진=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스틸컷.

법원이 통학로에 위치한 당구장이 청소년에게 유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과거의 편견에 얽매인 시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유사 사례를 놓고 법원에서 유해하지 않다고 판결한 적도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는 시민 배모씨가 서울시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당구장의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시설 제외 신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했다고 밝혔다.


배씨는 지난해 6월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지하 1층에 당구장을 운영하기 위해 지원청에 당구장을 교육환경보호구역 내 설립 금지 시설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을 지원청이 지역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의 끝에 거부하면서 배씨가 소송을 제기했다.

◇"당구장 출입 학생, 흡연·음주↑"…같은 법원서 "유해하지 않다" 판결도

당구장, 스크린 골프장 등 실내 체육시설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당구장에 금연을 알리는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재판에서 배씨는 "당구는 건전한 스포츠이고 당구장은 금연시설로 운영되고 있으며 청소년이 아닌 성인만 대상으로 영업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학교장과 교육당국이 관계 법령에 따라 내린 판단은 최대한 존중해야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구가 건전한 스포츠이긴 하지만 당구장에 출입하는 학생들은 흡연·음주를 더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등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해당 학교장도 학생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다.


반면 당구장이 청소년 유해한 시설인지에 대해서 다른 판단을 내린 판례도 있다. 지난 1월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김국현)는 다른 시민이 제기한 비슷한 내용의 소송에 대해 "당구는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고 18세 미만자 출입이 허용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 건전한 스포츠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지난해 12월부터 당구장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것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학교 주변 당구장 개장 금지의 근거가 되는 교육환경법 9조는 교육환경보호구역에서의 당구장, 무도학원 및 무도장 운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노래방, PC방, 오락실 등도 학교 주변에서 운영할 수 없다.

◇담배 연기 가득한 당구장은 옛말…"시대 변화 반영해야"

하지만 이 같은 법규가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구는 과거 사행성 게임으로 간주되거나 각종 일탈행위가 벌어지는 곳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당구인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성숙한 당구 문화가 자리 잡았다. 과거 오명을 벗어나고 있다. 또한 상당수 시설물이 일탈의 공간으로 간주되는 이유인 흡연 문제도 지난해 말 금연구역에 대폭 확대되면서 해결된 상황이다.

시민들은 당구장 등 시설의 환경이 바뀐 만큼 시각을 바꿔야한다고 지적한다. 직장인 유모씨(28)는 "당구장이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왜곡된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요즘에는 음주·흡연도 금지됐고, 문화도 경기를 즐기는 방향으로 바뀌어 건전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