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화학업계, '정비기간 어쩌나?'…근로시간 단축 발등에 불

"정유·화학업종에서는 안전을 위해 2~3년 주기로 시설 가동을 중지하고,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대정비·보수작업(turn around)을 해야 하는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넘기면 불법인가요?"

정유·화학업계에서 대정비·보수작업 두고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작업의 특성상 24시간 작업이 멈추면 안 되고, 전문인력이 제한돼 있어 집중적인 초과근로가 필요하지만 주당 52시간이 넘어가면 현재 개정된 법안으로는 불법이다.


20일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개정법 주요쟁점 설명회’가 열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원사 100여곳에서 120명의 인사 및 노무담당자가 설명회에 참석해 ‘열공’을 했다. 준비한 대형 강의실의 자리가 없어 옆 사무실에서 영상으로 설명회를 듣는 사람도 있었다.

SK인천석유화학 공장 전경. ./사진제공=SK인천석유화학

◇근로시간 단축 열흘 앞...정유·화학업계 "정비 어쩌나?"=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안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당장 법적용이 되는 300인 이상 기업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표적인 산업이 정유·화학업의 대정비·보수작업 시기에 대한 문제점이다. 이날 설명회에서도 이것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365일 쉬지 않고 공장을 돌려야 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특정시기를 정해 공장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공장 상태 파악 및 부품 교체, 신규 투자 같은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이 기간을 얼마나 압축적으로 줄이느냐가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생산성 향상의 핵심이다.

대부분 정유·화학기업이 이 기간만큼은 밤을 새며 정비 작업을 벌인다. 이동응 경총 전무는 "2~4주간 집중해서 빨리 끝내야 내년을 준비할 수 있다"며 "이 기간만큼은 52시간을 넘어서 근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총은 인가 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를 정부에 요청했다. 노사가 합의 후 정부에 신청해 52시간 초과 근로를 인가받는 것이다. 조선업의 시운전, 건설업의 기상악화로 인한 공기(工期)지연, 방송·영화 제작업도 인가연장근로가 필요한 산업이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현재 법률에서는 연장근로 허용이 자연재해와 재난으로 협소하게 한정돼 있다"며 "이 규정을 개정해 인가연장근로를 확대·허용하면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일 서울 대흥동 경총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최저임금 개정법 주요쟁점 설명회’의 모습 /사진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일찍 출근하는 것도 근로시간?...혼란 가중=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경영일선의 혼란도 문제다. 특히 사무직과 같이 근로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개인적으로 업무시작 전 일찍 출근하는 것도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야하는가'라는 질문도 현장에서 나왔다. 기본적으로 회사가 명시·묵시적으로 초과근로를 명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별 근로자가 임의로 업무를 수행해도 초과근로로 인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추후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회사와 사전 조율 없는 추가 근로제공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경총은 근로 시간 측정 방안으로 크게 △연장근로 사전 신청과 승인 △출퇴근, 휴게 시간을 개인이 사내프로그램에 직접 입력 등을 추천했다.

이외에도 이날 설명회에서는 △임원 운전기사의 근무시간 문제 △영업직의 간주근로시간제 △연구원의 재량근무제 △출장 이동시간의 근무시간 문제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김 본부장은 “소송이 발생하고 법원의 판결이 나와야만 분명해지는 것도 있다”며 “현재로써는 모든 문제를 정확하게 알기는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