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의 공포지수 된 엔화…무역갈등에 이례적 엔저 현상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엔화가 무역전쟁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된 최근 3개월간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는 이례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시장에서는 엔화가 더 이상 안전자산이 아니라 '공포지수'가 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19일(현지시간) 미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 우려 등으로 위험자산이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엔화 가치도 동반 하락세다. 지난 3월 이후 대표적인 위험자산가격지수인 MSCI 신흥국 지수가 12% 하락하는 동안 달러 대비 엔화 가치도 7% 떨어졌다.


엔화는 통상 금, 달러와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손꼽힌다. 안전자산은 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 돈이 몰리는 자산들이다. 따라서 주식 등 위험자산이 하락할 때 엔화 가치는 상승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이 같은 공식이 들어맞지 않고 있다.

시장에선 ‘이례적 엔저’의 원인으로 무역 갈등에 주목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이 무역 갈등의 타격을 크게 입을 수 있고, 이 우려가 엔화 가치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교역 상대국과의 무역적자 축소를 강조해 왔다는 점도 일본으로서는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일본은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미 무역대표부에 따르면 일본은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이어 미국의 4번째 주요 수출입국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일(對日) 무역적자는 약 283억달러(약 32조2000억원)로 지난 5년 간 최대 수준이다.


알바이스 마리노 크레디트스위스 무역 전략가는 "달러-엔화 환율이 무역전쟁의 영향을 나타내는 가장 명확한 지표가 됐다"며 "일본은 주요10개국(G10) 국가 중에서도 무역 갈등 우려에 가장 많이 노출됐는데, 미국 관세 부과 품목의 상당수가 일본의 주요 수입품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달러도 엔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올해 들어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이 긍정적인 경제 전망에 힘입어 금리인상 속도를 높이면서 환 수익 등을 노린 일본 내 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향후 12개월간 미국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27%인 반면 일본 주식은 12%에 불과하다. 일본 개인 및 기관투자자들은 6월 마지막 주 기준 해외 주식에 985억엔(약 1조원)을 투자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JP모건은 "엔화가 연말까지도 약세를 이어갈 수 있다"면서도 "일본은행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기존의 대규모 양적 완화 정책에서 선회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