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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명 '무능력자'가 갑자기 '능력자'가 됐다

[the L 리포트] 7월1일부로 금치산·한정치산 무효, 후견 신청은 극히 드물어…악용해도 속수무책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입력 : 2018.08.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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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 사진=이동훈 기자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 사진=이동훈 기자

2013년 개정 민법에 의해 지난 7월 1일부터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가 폐지됐지만, 대신 도입된 성년·한정후견인 지정을 신청하지 않은 이들이 2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치매 등 심신상실·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행위능력에 제한을 받았던 이들이 법률 개정으로 ‘완전한 행위능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 된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하루 아침에 ‘능력자’가 돼 버린 이들을 악용한 범죄의 소지가 있다고 우려를 제기한다.

12일 대법원에 따르면 종전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 폐지 및 성년·한정후견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은 이미 2013년 7월1일 시행됐다. 종전 금치산·한정치산 제도가 본인 의사를 반영할 여지를 전혀 두지 않아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다는 등 문제가 있었다. 그 대안으로 도입된 후견인 제도는 판단 능력을 완전하게 갖추지 못한 피후견인들이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잔존능력을 활용해 일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방점을 두고 설계된 제도다.

다만 개정 민법은 2013년 7월1일부터는 새로이 금치산·한정치산 선고를 내릴 수는 없도록 하되 올해 6월30일까지 5년의 시한을 두고 금치산자·한정치산자 등 행위능력에 제한을 받던 이들이 법원에 후견인 지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성년후견인 지정으로 고도의 판단능력이 필요한 법률행위를 행사할 수 있었던 대표적 경우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다. 신 명예회장은 법무법인 원이 설립한 사단법인 선의 도움을 받아 각종 법률행위를 본인 명으로 할 수 있다.

그 시한도 이미 올해 6월30일로 만료됐다. 후견인 지정을 신청하지 않은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들의 행위능력이 법적으로는 완전히 회복됐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 선고를 받은 이들의 법률행위는 취소가 가능했다. 행위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이들의 행위에 법적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올 7월1일부터는 후견인 지정을 받지 않은 과거의 금치산자와 한정치산자의 행위도 원칙적으로 되물릴 수 없게 됐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대법원에 따르면 올 6월말까지 유예기간 동안 새로 후견인 지정을 받지 않은 금치산자·한정치산자의 수는 각각 976명, 1010명 등 1986명에 이른다. 약 2000명이 하루 아침에 '무능력자'에서 '능력자'가 돼 버렸다는 얘기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다양한 이유로 성년후견 등을 신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 종전 금치산·한정치산 선고를 받은 후 새로 후견인 지정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행위능력 회복을 마냥 축복으로만 볼 수는 없다. 김동하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올해 7월1일자로 행위능력이 회복된 금치산자·한정치산자는 공직선거법상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재산처분도 임의로 할 수 있다"며 "민법 이외의 개별 법률이나 회사 정관에 제한사항이 없다면 금치산자라고 하더라도 법인의 이사 취임 등 각종 법률행위를 제한없이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금치산자 등을 꼬드겨서 '가짜 대표이사' 등에 취임하게 하고 뒤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등 악용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종전 금치산·한정치산 선고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수 없었던 이들을 속여 재산을 무상으로 처분하게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라고 했다.

법 개정 후 방치된 종전의 '행위 무능력자'들과 기존에도 보호의 틀에서 소외돼 왔던 '제한 능력자'들을 발견해 적정한 후견인을 연결시켜주는 게 해답일 수 있다. 종전 금치산·한정치산 선고를 받은 후 후견인이 지정되지 않은 이들을 찾아내 이들에게 새롭게 후견인을 배정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민법은 본인이나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뿐 아니라 공익의 대변자로 임무가 규정돼 있는 검사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법원에 후견개시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3년 7월부터 금치산·한정치산 선고가 없어지면서 행위능력이 제한된 이들을 위한 후견신청 건수는 2013년 1058건에서 지난해 5958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제한 능력자에 대한 부양 책임이 오로지 가족에게 있다는 등 옛 관념 등 이유로 정작 가족들이 직접 법원에 후견인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검찰 차원에서도 무연고자, 학대 피해자 및 피해 의심자 등에 대해 공익 목적으로 후견인 지정을 신청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건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관내 주민들과 접점이 넓은 지자체의 역할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익사단법인 온율에서 근무하는 배광열 변호사는 "개정 민법에 따르면 지자체가 관내에서 후견이 필요한 이들을 확인하고 이들에 대한 성년후견인 지정을 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마련했다"며 "그럼에도 관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자발적으로 발굴해 성년후견인 지정을 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배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의해 지자체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해서 이들에게 후견인을 연결해 주도록 하는 의무가 부과돼 있고 정신병원 입원 환자나 치매환자에 대해서도 관련 법령 개정으로 공공후견인 제도가 시행됐거나 시행될 예정"이라며 "지자체가 보다 전향적으로 후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발굴해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년후견제도 기본법' 제정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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