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의 골목, 도시] 광화문광장은 왜 '노잼'일까?

광화문광장 전경 /사진=위키매핑

한국의 광장은 지루합니다. 바람을 쐴 겸 광화문광장을 찾았습니다. 탁 트인 북한산과 광화문의 모습은 볼만했지만 앉을 곳도 볼 것도 찾지 못하고 몇 분 만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방문객이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심심한 광장은 광화문광장 뿐 만이 아닙니다. 시청 앞 서울광장도 마찬가지죠. 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각국의 멋진 광장에 눈을 뜬 시민들은 재미없는 한국의 광장에 대한 불만이 큽니다.

왜 한국의 광장은 재미없을까요?

조선시대 경복궁 앞 육조거리를 재현한 모형. /사진=서울역사박물관, 한국전통문화학교

이유를 찾기 위해선 광장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일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黒川紀章)는 '동양의 도시에는 광장이 없다. 광장의 역할을 하는 것은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역대 왕조는 왕궁 정문 앞으로 '주작대로'라고 불리는 널찍한 길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서울과 경주,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과 베이징에는 주작대로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폭이 수십 미터에 달하는 넓은 길 주변으로는 관청이 들어섰고, 왕이 주최하는 국가행사가 거행됐습니다.

일찍이 강력한 왕권이 자리 잡은 동양의 주작대로는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관치 광장'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소통이 사라지고 삭막한 광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군사 퍼레이드를 위해 조성한 5·16 광장(현 여의도공원), 중국의 톈안먼광장, 일본의 황궁 앞 황거공원도 교류보다 권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현재의 광화문광장도 광장이라기보단 대규모 행사와 집회가 치러지는 무대에 가깝습니다.

이탈리아 나보나광장. 로마시대 경기장 관중석을 따라 상점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사진=픽사베이, 구글맵

반면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나면 꼭 찾는 유럽의 유명 광장들은 자연스럽게 조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여행의 필수 코스인 나보나광장은 고대 로마시대에 지어진 도미치아누스 경기장이 버려진 채 시간이 지나 관중석을 따라 상점이 들어서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로마시대에 검투가 펼쳐지던 공간이 거리의 악사와 사진을 찍는 여행객이 만나는 광장으로 변한 겁니다.

가톨릭도 광장이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시대에 마을은 성당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매주 일요일 마을 주민들은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린 뒤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자연스레 성당 주변에는 상점이 들어섰습니다. 여기에 관청과 귀족의 저택까지 성당 주변을 차지하면서 오늘날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광장이 생겨났습니다. 권력자가 직접 만든 동양의 거대한 광장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캄포광장. 반원형 광장을 상점들이 둘러싸고 있고 도로로 연결되어있다. /사진=플리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이런 방식으로 생긴 한국의 광장은 서양의 광장에게 있는 두 가지가 부족합니다.

첫 번째는 '연결'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광장은 원래 도로였습니다. 광화문광장은 16차로였던 세종대로의 6개 차로, 서울광장은 시청 앞을 지나던 교차로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차량 교통의 중심지에 대규모 광장이 조성되면서 광장은 거대한 도로에 둘러싸였습니다. 차로 가득한 교통의 바다에 뜬 '섬'이 된 것입니다.

건축학에선 일반적으로 보행자가 왕복 4차로(폭 약 20m) 이상의 도로 건너편으로는 쉽게 건너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6~10차로 도로에 둘러싸인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은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중심지에 만들어졌지만 쉽게 접근하긴 어렵습니다. 한국에선 대규모 행사나 집회가 있을 때만 광장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체코 프라하의 바츨라프광장. 광화문광장처럼 폭이 좁고 길며 도로로 둘러싸여 있지만, 도로의 폭이 좁고 횡단보도가 많아 보행자 접근이 쉽다. /사진=체코관광청

그렇다면 도로로 둘러싸인 광장은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을까요? 2차로 이하의 좁은 도로는 광장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광화문광장처럼 좁고 긴 사각형 광장을 차로가 둘러 싼 체코의 바츨라프광장에는 보행자가 자유롭게 오갑니다. 차로의 폭이 좁고 10~20m마다 횡단보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청계광장도 양쪽으로 도로가 지나가지만 폭이 좁아 많은 직장인들이 쉽게 찾습니다. 차와 보행자가 공존을 이뤄낸 사례입니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 광장 주변에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 있고, 방문객으로 붐빈다. /사진=플리커

한국의 광장에 부족한 또 한 가지는 상점입니다. 베니스나 파리 여행을 생각하면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광장에 모인 사람과 멋진 건물을 구경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광장을 따라 들어선 기념품 가게나 서점에 들러 물건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광장의 기원으로 꼽히는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룸(Forum)은 교류와 토론 그리고 상행위의 중심지였습니다.

반면 광화문광장에선 물 한 병 살 곳도 없습니다.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꿈도 꿀 수 없죠. 가까이에 있는 가게도 없으니 눈길을 둘 만한 곳은 근엄한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전부입니다. 서울광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불편하고 지루한 광장에는 관광객만 모여들 뿐 시민들은 찾지 않습니다.

상점은 단순히 상행위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닙니다. 재밌는 물건과 눈요기거리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사람조차도 쇼핑몰에 가 가게를 둘러보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상점 하나 없는 교통섬, 한국의 광장이 지루한 이유입니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감도. /사진제공=서울시

지난 4월10일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광화문광장 개편을 담은 ‘새로운 광화문광장 조성 기본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광화문광장 서편 세종대로 10차로로 광장을 확장해 정부서울청사·세종문화회관과 광장을 연결하고, 광화문 앞에 역사광장(면적 4만4700㎡)을 새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약점인 연결성을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확장을 결정했지만, 광화문광장이 관광객이 아닌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전히 동·남·북쪽으로는대로가 가로지르는 '반도' 신세니까요. 맞닿아 있는 상점도 카페 한두 곳과 화장품 매장 정도에 불과합니다.

서울시가 공개한 조감도에는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시민들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벤치도, 카페도, 상점도 보이지 않는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무슨 일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2022년에 또 한 번 모습을 바꿀 광화문광장은 '노잼광장'의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새 광장은 정치인의 업적을 빛내기 위한 광장이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공간이 될 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