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달러 '반도체 한국' 전설 강기동 박사 '씨앗 뿌리자 열매 열렸죠'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자서전 '강기동과 한국반도체' 출판기념회에서의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 강기동 박사가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반도체의 씨앗만 뿌린 게 아니고 열매가 열리도록 했습니다. (반도체를) 세계 1등으로 키운 것에 일력을 했다(힘을 보탰다)는 걸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전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하고, 이후 삼성반도체 초대 사장을 지낸 '한국 반도체의 대부' 강기동 박사가 3일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한 말이다.

이날 기념회에서는 그의 고교 친구기도 한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대학(서울대 전기공학과)에서 함께 수학한 서정욱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축사를 했다.

이 전 총리는 축사에서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고등학교가 없이 경기중학교 4학년을 다니다가 갑자기 고등학교가 생기면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입학했지만, 경기고 49회 친구들 중에 유독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강 박사에 대한 기억을 꺼집어냈다.


서정욱 전 장관은 강 박사와 한국 최초의 아마추어 무선연맹인 햄(HAM)을 설립했던 과정을 소개했다.

또 그와 반도체 사업을 함께 한 선배와 동료(김규한 전 켐코 사장, 안 응우옌 전 한국반도체 엔지니어)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강 박사가 갖고 있던 국내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1호 자격증을 한국 아마추어 무선연맹에 사료로 증정하는 행사도 가졌다.

그의 자서전 '강기동과 한국 반도체'(아모르문디 펴냄)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체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기 전 시절의 고군분투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강 박사는 미국 유학 당시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모토롤라 반도체, 스튜어트-워너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에서 근무했다.

이후 미국에서 관련 사업을 하다가 귀국, 1974년 1월 경기 부천에 한국 최초의 반도체 제조공장 한국반도체(자본금 100만달러)를 창업했다. 하지만 강 박사의 한국반도체는 중동전쟁 여파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결국 삼성 쪽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 뒤로도 반도체와의 인연은 이어져 현대전자(현재 SK하이닉스)도 그의 자문으로 시작되었다. 정주영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사장 선임도 예정돼 있었지만 주변의 만류로 강기동이 아닌 정주영 현대전자 대표로 시작될 정도였다. 현대와 삼성의 자존심 싸움으로 반도체 개발 경쟁이 이어졌고 기술발전이 이뤄졌다는 게 강 박사의 설명이다.

책에는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 때 친구(최광수 비서관(전 외무부 장관))에게 먼저 말을 건넨 일, 한국 사업의 단초가 된 노신영 전 국무총리(당시는 LA총영사)와의 만남, 미국에서 반도체가 아닌 납땜용 인두로 생계를 이어간 일, 60대를 넘겨서는 볼륨댄스 지도자가 되고자 했던 일 등 왕성한 사업 욕구만큼 다양한 경험도 담겨 있다.

그는 책에서 ‘강기동의 반도체가 열매를 맺고 성공함으로서 지금 전세계가 알아주는 반도체 강국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썼다.


실제로 반도체는 올해 10월까지 단일품목 최초로 연간 1000억달러 수출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고 수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77년부터 지금까지의 반도체 누적 수출이 1조달러를 돌파했다. 실패한 줄로만 알았던 강기동 박사가 설립한 '한국반도체'로부터 시작된 반도체 한국의 현재다.

3일 오후 인터콘티넨탈 서울코엑스에서 열린 자서전 '강기동과 한국반도체' 출판기념회에서의 한국 최초의 전(前)공정 반도체 공장인 '한국반도체'의 설립자인 강기동 박사(오른쪽)와 투자자였던 김규한 당시 캠코 사장(사진 중앙)이 당시의 사업계획서 사본에 서명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974년 1월 설립된 한국반도체는 설립 당시 10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실제 회사 설립 당시 두사람이 서명한 조인식 서류가 없어, 올해 99세인 김규한 당시 사장과 강 박사가 후세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날 서명하는 행사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