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피해자"… '성토의 장(場)'된 청와대 국민청원방

/사진=이미지투데이

청와대 홈페이지 내 국민청원 게시판이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기 위한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유죄 판결이 난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나 사실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이수역 폭행 사건'은 청원방을 통해 화제가 됐는데, 이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20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청와대는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에 따라 이 같은 제도를 시행 중이다. 여러 현안들에 대해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대통령 수석 비서관·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고 있다. 게시된 날로부터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를 누른 청원에 한해서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청원이 마감된 '청소년 보호법은 폐지해야합니다'(청원 참여 인원 29만6330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5개 청원에 공식 답변했다. 행정부와 국민의 직접 소통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국민적 지지도 상당했다. 지난 6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 '운영을 지속해야한다'는 지지 의견은 60.3%에 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방

하지만 최근 몇달 사이 국민 청원방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청원(곰탕집 성추행 사건)이 화제됐을 때 이 같은 비판이 나왔다. 이 청원에는 한달 동안 총 33만587명이 동의했는데, 청원자의 남편이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뒤 법정구속됐다는 내용이다. 청원자는 "제 남편이자 8살된 아들의 아빠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며 "재조사하게 해달라"고 적었다.

청원 글에 따르면 남편 A씨는 지난해 11월 참석한 행사의 뒷정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 옆에 있던 한 여성과 부딪혔다. 해당 여성은 A씨가 본인의 엉덩이를 만졌다며 경찰을 불렀고,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받았다. 청원자는 "CCTV 영상에 하필 그 장면이 신발장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남편이 여자의 뒤를 지나가며 손을 앞으로 모았는데, 판사는 신체 접촉 후에 취하는 행동으로 판단했다고 한다"고 적었다. 이 같은 글이

청원자가 함께 게시한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강제추행 혐의로 그의 남편에게 징역 6월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내용, 피고인이 보인 언동 등에 관하여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재판 내용을 부정하는 해당 청원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즉 해당 사건이 이미 사법 절차가 끝난 사안이라는 것. 이에 따라 법적으로 유죄판결이 된 사건을 '국민청원'으로 이끌어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는 우려였다. 또 국민청원 글이 온라인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는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2차 가해가 가해져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아가 사법부가 판결을 끝낸 사안에 대해 행정부인 청와대에 재차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 '삼권분립'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이 지난 10월12일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국민 청원에 답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지난달 12일 공식 답변을 내놨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이 사건은 현재 2심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으로, 청와대가 언급하는 건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청원방은 '온라인 공론장'이므로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지만, 사법부와 입법부 관련 이야기는 청와대가 다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원하실 때도 이런 점을 감안해주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지난 14일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한번 발생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다.

청원자는 "지난 13일 새벽4시쯤 이수역의 한 맥주집에서 남자 다섯 명이 여성 두 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글을 올렸다. 그는 같은 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도와주세요.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해 입원 중이나 피의자 신분이 되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글에 따르면 두 여성은 전날 새벽 4시쯤 이수역 인근의 한 맥줏집에서 옆 테이블 커플과 시비가 붙었다. 시비가 말싸움으로 번지자 갑자기 남성 다섯명이 끼어들어 "저런 것들도 사람이냐" "얼굴 왜 그러냐" "메갈X 실제로 본다"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고 주장했고,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단 이유만으로 남자 5명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이수역 폭행 사건'의 피해자라 주장하는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사진과 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해당 청원은 지난 15일 오후 30만명의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이수역 폭행 사건 현장'이라는 영상이 게시되며 상황이 더욱 복잡해졌다. 아직 해당 영상이 '이수역 폭행 사건' 관련 영상이 맞는지, 어떤 상황에서 촬영된 것인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상에는 주로 여성들이 남성들을 조롱하는 발언들이 담겨있다.

이 사건 역시 크게 화제되며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갈등으로 번졌다. 갈등이 격해지자 경찰 수사를 통해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민감 사안을, 국민 청원방에 올려 호소하는 건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즉 '곰탕집 성추행 사건'과 '이수역 폭행 사건'이 연속적으로 생기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청원을 올려 청와대를 온라인 커뮤니티나 개인 SNS화(化) 한다는 지적 △청원방에 게시된 사건이 빈번하게 본질과 상관없는 성 대결로 치닫게 된다는 비판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대리전 양상이 자주 나타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만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본래 국민청원방은 긍정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정치에 대한 엄숙성을 깨뜨리고 국민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직 국민청원방이 생긴지는 일년여밖에 되지 않았다"며 "청와대 국민청원방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더라도, 이는 결국 사회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고 책임연구원은 "청원방을 통해 성별 갈등이 생기더라도 일베나 워마드처럼 어느 한쪽의 주장으로만 쏠리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흐름 속 점차 자정작용이 이뤄지면서 더욱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