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은 게 터졌다"… 검은 성탄증시 부른 사건들

/AFPBBNews=뉴스1

전세계 증시가 '검은 성탄절'이라 불릴 만한 폭락장을 맞았다. 미국 내 정치 갈등이 1차적 원인이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18년을 '경제의 해'라고 할 만큼 올해 국제사회에서 경제와 증시를 억누를 각종 사건들이 잇따라 터진 점을 배경으로 지목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금리인상 등의 요인들이 누적된 결과 증시 폭락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증시 반등도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FT가 선정한 올해 주요 경제적 사건들을 분기별로 짚어봤다.

◇1분기: 증시 상승세·낙관론 지배한 시장
시작은 좋았다. 주요 국가들이 강한 성장률을 보였다. 미국 뉴욕 증시는 역사적인 신고점을 세우는 등 기세가 높았다.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만이 유일한 흠이었다. 지난 1월1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EU(유럽연합)과의 관세동맹 및 단일 시장에서 동시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선언했다. 이 무렵 세계은행은 "너무 좋아서 지속가능하기 어렵다"며 경기 침체 대한 우려를 내놨다.


2월은 상승세가 조정받는 시기. 증시와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통화가 동시에 하락세를 보였다. 증시는 중순까지 급락하며 '주가 변동 발작(Volatility Tantrum)'이 발생했다. 이때만 해도 조정 국면이란 의견이 많았다.

3월은 올해 내내 EU를 뜨겁게 달군 이탈리아 총선이 벌어졌다. 반(反)EU·반이민정책을 표방하는 극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오성운동이 제1당에 등극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시장에서는 지난 3개월간의 선거 불확실성이 사라졌다는 안도감과 함께 새로운 포퓰리즘 정당이 몰고올 폭풍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다.

이 달은 무역전쟁의 서막을 알린 시기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초 수입산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선 무역전쟁 전면전에 대해 설마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6월까지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을 것이며, 그 이전에 관세를 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2분기:무역전쟁 격화·신흥국 위기 조짐
4월부터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면서 증시가 요동쳤다. 양측의 보복 언급을 하면 하락하고,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면 반등하기도 했다.

5월은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며 신흥국 위기의 조짐이 시작됐다. 앞서 3월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면서 신흥국 자본 유출이 가속화한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0% 금리 시대를 끝내고 서서히 금리를 인상하면서 지난해부터 신흥국 자본 유출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미국의 금리인상을 계기로 이른바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일어난 것이다. 만성 무역적자 및 재정적자를 기록하던 아르헨티나는 40% 기준금리 인하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놨지만 버티지 못했다.

6월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에 대한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유럽산 수입차에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협박했고, 철강 관세로 인해 미국 내 철강 가격이 연초 대비 35%가량 오르는 등 여파가 미치기 시작했다. 7월 들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340억달러어치에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면서 미중 무역전쟁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3분기:신흥국 위기 확산·伊-EU 갈등 시작
7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1%로 4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성과를 자신에게 돌리기 바빴다.

반면, 터키를 시작으로 신흥국 금융위기가 퍼져나갔다. 터키에 억류된 미국인 목사 석방 문제를 놓고 미국이 터키에 관세폭탄 등의 제재를 가하면서, 그동안 외화 채무를 바탕으로 한 성장의 밑천이 드러난 것이다.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하루 만에 12% 급락하는 등 시장이 충격을 받았고, 인도네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가치마저 줄줄이 하락하며 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의 재현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탈리아발 갈등도 시장을 또다시 혼란으로 밀어넣었다. 3월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한 이탈리아가 EU와 예산안을 놓고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내년도 예산안에서 재정적자폭을 GDP(국내총생산) 대비 2.4%로 설정했고, EU는 예상치보다 너무 높다며 줄일 것을 요구하며 맞섰다.

◇4분기:무너지는 선진국 경제·내년 전망도 암울
유로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시장예상치를 밑도는 0.2%에 머물며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선진국 경제마저 휘청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유럽 제조업의 심장인 독일도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 새로운 배기가스배출규제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대비 0.2% 감소하며 3년 만에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일본도 전분기 대비 0.3% 감소한 GDP를 발표하며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중국도 무역전쟁 여파로 거진 10년 만에 가장 나쁜 경제지표를 받아들면서 증시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과 비슷한 흐름의 폭락장이었다. 10월 시작된 위기는 결국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1월부터는 영국의 브렉시트 갈등이 커졌다. 메이 총리가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마치자 내각에서 사임하는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영국 하원은 메이 총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서는 메이 총리 불신임 투표까지 이어졌다. 메이 총리는 살아남았지만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지난 8월 신흥국 위기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러대비 파운드화는 닷새 동안 2% 넘게 급락하면서 20개월 만의 최저치를 연일 경신했다. 올해와 비교해서는 7.5% 하락했다.

10월부터 커지기 시작한 세계경제 둔화 공포감이 점점 실제로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이달은 여전한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 불확실성 등 대외적인 요인에 미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이 더해졌다. 여기에 미국 내 국경장벽을 둘러싼 연방정부 '셧다운(임시폐쇄)'과 시리아 철군 등 정치적 이유들이 맞물리면서 미 증시도 약세장(전고점 대비 20%이상 하락)에 진입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지난 10월 연고점 대비 각각 20.06%, 23.89%씩 하락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고점 대비 19.14% 하락하며 약세장이 코앞이다.

2018년 미국 증시 3대 지수 변화. 순서대로 다우, S&P500, 나스닥 지수. /사진=블룸버그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따르면 약세장에 진입한 시장은 고점 대비 평균 30.4%까지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주요 증시가 10%가량 더 하락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또 약세장은 평균 13개월 동안 지속됐으며, 하락폭을 회복하는 데는 평균 21.9개월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전세계에서 터진 사건들로 인해 전문가들이 내년에도 약세장이 계속될 것이란 예측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