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매입기구 본격 가동 앞둔 美…한국은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홍남기(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2020.04.22 [email protected]

코로나19 위기수습책으로 도입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회사채 매입기구(특수목적법인·SPV)가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면서, 이를 본 뜬 한국식 SPV 가동 시점에 관심이 모인다.

미국 뉴욕연방은행은 지난 4일(현지시각) "5월초부터 SMCCF(유통시장 회사채·ETF 매입기구)가 ETF(회사채 상장지수펀드) 매입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며 "PMCCF(발행시장 회사채 매입기구)도 가동을 앞두고 있고, SMCCF의 회사채 매입도 곧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3월 미 연준이 회사채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한 SPV(특수목적기구)가 한달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드디어 가동되는 것이다.

연준은 미 재무부가 지급보증(신용보증 또는 자본투자)한 SPV에 대출을 실시하고, SPV는 이를 토대로 회사채와 ETF를 매입해 시장안정을 유도한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연준 제도를 본 따 '저신용등급 포함 회사채·CP 매입 SPV'를 설립하기로 했다. 총 20조원 규모로, 정부의 재정지원 하에 한은이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정부와 한은은 SPV 자금지원 형태, 사후처리 등 SPV의 구체적인 운영방식을 놓고 협의중이다.


한은 관계자는 "논의가 많이 이뤄진 단계"라며 "디테일을 놓고 계속 협의중"이라고 말했다.
자금지원 형태 쟁점은 ①손실보전 국회 동의 ②기업 건전성 선별 전문성자금지원 형태와 관련해서는 중앙은행 손실 최소화 원칙, 조사·감독 업무 등 여러 이슈가 얽혀있는 상황이다. 자금지원 형태는 크게 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하고, 산업은행이 SPV에 자금을 지원하는 '우회지원' 방식과 SPV에 대한 '직접대출' 방식이 거론된다.

정부와 한은은 '손실보전에 대한 국회 동의 여부' 관점에서 자금지원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한은은 정부의 SPV에 직접대출한 뒤 손실이 생기는 경우 국회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내년도 예산집행 내용이 미리 확정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은법 100조는 한은 회계연도에서 발생한 손실은 적립금으로 보전하고, 적립금이 부족한 경우 정부가 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은의 손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년도 예산에서 이를 보전하기 위한 예산규모가 커질 수 있다. 지난해말 기준 한은의 법정적립금은 9조8000억원 수준이다.

반면 국회 동의를 거친 예산으로 지급보증을 받은 산은에 대출하는 경우 손실보전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SPV를 가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산은이 손실을 보는 경우 산은법에 따라 정부가 이를 보전한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손실부담의 당사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지만, 국회 동의를 거친 손실이냐, 아니냐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나라살림 원칙과 맞닿아있는 문제다.

한은은 통화정책이 특정부문 이익을 위해 쓰이면 안 된다는 '보편주의 원칙' 측면에서도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SPV에 대한 자금지원은 결과적으로 중앙은행 발권력이 특정 기업 지원에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SPV 운영이 일반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도록, 기업에 고용유지 조건 등을 내걸 계획이다.

코로나19 위기 수습을 위한 재정당국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3차 추경안에 SPV에 대한 지원자금을 얼마나 담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매입대상 채권에 대한 조사, 심의기능도 쟁점 중 하나다. 한은은 SPV에 직접대출하는 경우 매입대상 채권에 대한 조사, 심의기능이 지금보다 크게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현재 갖고 있는 감독권한과 인력만으로 대출 자금의 최종 귀착지인 개별 회사채의 부도 가능성을 완벽히 가려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한은은 긴급대출 실행시 한은법에 따라 해당 기관 업무와 재산상황을 조사, 확인할 수 있다. 한은은 1998년 은행감독업무가 폐지된 이후 현재 금융감독원 공동검사 등 제한적 형태로 금융기관 검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은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조사·심의 역량 등을 감안할 때 산은을 통해 우회적으로 SPV에 자금을 지원하고, 조사·심의 과정에 한은 인력이 참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금융시장 관계자는 "미 연준의 경우 은행감독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민간과 협력해 회사채 매입기구를 운영한다"며 "한은도 법에 명시된 조사권을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마련해, 자금지원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 연준의 경우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Bank & Trust Company) 등에 회사채 매입기구 운용과 가치평가, 관리 기능을 맡기고 있다.

신용등급별 레버리지 비율 차등화,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벌칙금리 적용 등에 대해서도 어떤 결론을 낼지 관심이다.

미 연준은 SMCCF 매입대상 회사채에 투기등급(3월 22일 전까지는 투자등급)까지 포함했지만, 이 경우 재무부 자본투자액 대비 레버리지 비율이 투자등급(10배) 회사채와 다르게 7배 또는 3~7배로 낮아진다. 레버리지 비율, 벌칙금리 등 장치로 중앙은행 손실 위험을 줄이고 있다.
한국식 SPV 운영방안 확정 언제…14일 금통위·3차 추경 일정 등 주목정부와 한은은 SPV 가동 시점과 관련 현재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에서 자금조달방식 등을 논의 중이며,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내용을 조속한 시일 내에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빠르게는 오는 14일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방안이 확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금통위는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대출금리, 대출담보, 사후처리 등 SPV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정해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정부의 3차 추경 편성 일정과 맞물려 SPV 운영방안을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 지급보증 여부가 SPV 가동의 핵심 포인트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오는 28일 예정된 금통위에서 운영방안을 확정하거나, 임시 금통위를 열 가능성도 있다.

SPV 가동 시점은 정부 지급보증 형태에 따라 3차 추경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처음 시행하는 제도기 때문에 한은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기는 할 것"이라며 "일단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서라도 제도를 구체화하고, 시장안정을 지원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