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시장 '5G 잭팟'…2018년 이재용은 미리 계획했었다

삼성전자 (78,400원 ▼800 -1.01%)가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과 8조원 규모의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2018년 8월 180조원 투자계획과 함께 발표한 4대 미래성장사업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제시한 청사진이 또 다른 도약을 향한 발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5G 부문은 이 부회장이 2018년 인공지능, 전장(자동차 전자장비)용 반도체, 바이오과 더불어 4대 미래성장사업으로 꼽은 분야지만 그동안 인공지능, 반도체 중심의 자동차 전장부품, 바이오 부문에 비해 실적이나 성과가 기대를 밑돌았다. 5G 사업을 이끄는 네트워크사업부가 한때 매각설에 휘말린 데도 이런 탓이 컸다.


이 부회장은 4대 미래성장사업 발표 전후로 5G 부문에 꾸준히 공을 들였다. 지난해 새해 첫 현장 행보로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생산라인 가동식 현장을 찾으면서 힘을 실었다. 버라이즌과의 이번 계약을 앞두고도 미국 현지시간에 맞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와 수차례 화상통화를 하며 직접 영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1위 통신사업자인 미국 버라이즌과의 이번 계약은 삼성전자가 '내수용 5G 사업' 같은 그동안의 부정적인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통신장비 무대로 본격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크다.

지난해 5G 장비 시장점유율은 화웨이가 32.6%로 1위를 기록했고 2·3위의 에릭슨(24.5%), 노키아(18.3%)에 이어 삼성전자(16.6%)는 4위에 그쳤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유영민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만나 시장점유율 20%를 목표치로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버라이즌과의 계약으로 삼성전자가 이 목표치에 한층 다가선 것으로 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5G 장비 시장은 지난해 76억달러(약 9조원)를 기록했다. 올해 시장 규모는 106억달러, 내년에는 190억달러, 2022년 233억달러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4대 미래성장사업 가운데 나머지 분야에서 이미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 시스템LSI사업부가 지난해 자율주행차의 인공지능 두뇌가 될 전장용 NPU(신경망처리장치) 개발을 마쳤고 아우디와 NPU를 탑재한 차량용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V9'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1위 업체 네덜란드 NXP와도 지난해 8월 자율주행에 적용될 무선통신기술 UWB(초광대역) 표준 제정을 위한 컨소시엄을 공동 발족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아마존이나 구글에 비해 다소 출발이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세계 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관련 특허를 확보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인 인공지능 석학이 삼성전자에 합류했다. 올 상반기 반도체 설계, 인공지능 분야에서 채용한 박사급 인력이 500명을 웃돈다.

통합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 산하의 글로벌 연구소가 국제경진대회에서 거둔 성과도 두드러진다. 폴란드연구소와 베이징연구소가 언어번역 인공지능 부문의 국제워크숍에서 올해 잇따라 우승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한국,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 러시아 모스크바 등 7곳개 지역에서 AI(인공지능)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바이오 사업의 핵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업계 전문가들도 놀라는 급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 수주액은 지난해 연간 3789억원에서 올 상반기 1조7647억원으로 늘었다.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가 연이어 생산을 의뢰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착공에 들어가는 제4공장 증설 프로젝트에 1조74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완공되면 단일 공장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25만6000리터)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장이 된다.

재계 한 인사는 "이번 5G 성과로 이 부회장이 2년 전 발표했던 4대 미래성장사업이 모두 본궤도에 진입했다"며 "이 부회장의 경영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