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세금 깎고 보조금 주잖아"…기업들의 이유 있는 '탈코리아'

/사진 = 이지혜 디자인기자

"아직 핵심 공정은 대부분 국내에 있지만, 원가 압박이 계속될 경우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기업들의 해외 공장 건립이 잇따르는 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과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심화되던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공장의 자국 복귀 현상)'이 한풀 꺾였고, 주요 국내기업들도 세제 혜택이 많으면서도 인재 수급이 쉬운 미국·동남아 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재계는 얼어붙는 국내 고용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차원의 지원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반도체·전기차 등 주요 기술 공장의 해외 건립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현지 시장 공략도 용이할 뿐더러 세제, 보조금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주요국들이 늘면서다. 미국은 지난달 반도체법을 통과시키고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는 회사에 390억달러(한화 약 52조원)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유럽연합(EU)는 유럽 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수조원대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맞춰 국내 주요 기업들도 미국 등 해외 공장 건립에 적극적이다. 삼성전자 (78,900원 ▲1,500 +1.94%)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원)를 들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최근엔 향후 20년간 총 1921억달러(약 252조억원)를 투자해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하는 장기 계획을 추진한다고도 밝혔다. 일부 공장은 이르면 2034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전망으로, 1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 (190,100원 ▲200 +0.11%)도 2025~2026년 양산을 목표로 미국 내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포장) 공장과 연구개발(R&D)센터 등을 설립, 15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아직 구체적인 투자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SK하이닉스의 입장이지만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이번 투자로 1000여명 이상의 고용이 창출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 미국 의회 문턱을 넘은 이른바 '반도체법'의 전폭적인 지원도 기대된다.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동남아 현지 공장 건립도 활발하다. 현대차 (250,500원 ▲6,500 +2.66%)는 지난 3월 15억500만달러(약 2조원)를 투자, 인도네시아에 아세안 지역 최초의 완성차 생산 거점을 구축했다. LG에너지솔루션 (372,000원 ▼4,500 -1.20%)도 인도네시아와 합작 배터리 공장을 현지에 건설 중이다.

재계는 반도체 등 주요 부문의 핵심·첨단 공정은 아직 국내에 있지만, 여건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 공장 유출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지정학적 이슈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탈중국화'가 가속화되면서 유럽·북미 등 주요국 정부는 세제혜택과 지원금을 내걸고 치열한 유치전에 돌입했으나, 국내는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어서다. 법인세율이나 투자 인센티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만 등 경쟁국보다 불리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높은 인건비·에너지 비용도 부담스럽다.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가 지출한 인건비는 15조 953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조 9762억원(14.1%) 증가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인건비가 45.4% 늘었으며 LG전자도 22.7% 늘었다. 특히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협약) 동참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아직도 국내 재생에너지 비용은 해외보다 1.5배~2배 가까이 비싸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위한 기업들의 높은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세제 지원 등 정부차원의 대책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결국 구체적인 지원책 없이는 주요 기업들의 해외 유출이 심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제조업 일자리는 18만명이 줄었는데, 미·독·일은 모두 늘었다"라며 "노사갈등과 비싼 에너지 비용, 인건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투자·고용은 점차 위축돼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