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도 힘들던 증권 영업맨, 폭락장 12억 유치

A증권사 강남지점 영업담당 B대리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주가는 최악의 국면을 보이고 있지만 신규자금 유치는 오히려 늘었기 때문이다.

나흘 연속 폭락에 가까운 장세가 연출되며 손절매 시점도 잡지 못해 울화통이 터진 기존 고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더 큰 규모의 자금이 영업소로 몰려 직원들조차 놀라고 있다. 저가매수 타이밍을 노리던 투자자들의 문의도 쇄도한다. 평소 하루 1억원 가량을 신규 유치하던 B대리는 이날 오전에만 12억원을 유치했다.

5일 종가기준 코스피는 전일 대비 74.72포인트 빠진 1943.75까지 밀렸다. 지난 2일 -51.04포인트를 시작으로 3일 -55.01포인트, 4일 -47.79포인트를 기록한데 이은 나흘 연속 폭락 릴레이다.

2200선 재등정을 목전에 뒀던 지난달 말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증권업계도 패닉이다. 외인들이 연이어 매도 주문을 내며 시가총액이 빠르게 새나가고 있다.

↑미국 증시 급락의 여파로 전날대비 코스피지수가 74.72포인트 하락한 1,943.75로 장을 마감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의 직원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동훈기자

대형주들도 속절없이 약세다. 90만원선을 목전에 뒀던 삼성전자는 이날 80만원대가 붕괴됐다. 현대차와 기아차 역시 대세하락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고 나흘 연속 주가가 빠지고 있다.

증시의 갑작스런 냉각은 미국 부채한도 증액 타결이 곧 긴축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투심이 급격히 위축됐다.

투자자들의 시름이 커지는 가운데 저가 매수 시점을 살피던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현장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B대리가 일하고 있는 지점의 자금 유입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증권업계는 저가매수 시점이 도래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성급한 투자 확대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은성민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950선 정도면 저평가 매력이 있으며 기술적 반등이 나올 시점이 된 것도 맞다"며 "다만 오는 9일 중국 CPI(소비자물가지수) 등 거시경제지표들이 발표되는 만큼 이걸 지켜보고 매수에 가세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제사정이 빠르게 호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돼 성급한 저가매수 참여가 오히려 손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자금이 유입됨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통상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입되는 투자는 저가매수로 단타 이익을 얻고 나면 곧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른바 '뜨내기 자금'이다.

B대리는 일찌감치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운 증시 생각은 접어두고 어린 딸과 함께 야구장이나 갈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