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때려치고 '동대문行' 30대男, 年20억씩…

↑동대문의류시장에서 '맨땅에 헤딩'한 지 7년여.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꿈을 키우는 윤진철씨는 '베이드 인 동대문' 의류를 통해 새로운 한류바람을 일으킨다는 각오를 다졌다./사진=임성균기자 [email protected]

첫 직장은 남들처럼 평범했다. 서울의 한 빌딩에 위치한 은행 전자시스템 관리직.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자라 청주시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주변의 권유에 다른 이들처럼 '샐러리맨'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었다. 전기를 만지는 것도 무서웠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맨땅에 헤딩'한 지 7년여.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꿈을 키우는 젊은 사업가가 됐다. '메이드인(Made In) 동대문' 의류를 통해 새로운 한류를 일으키겠다는 각오다.


윤진철씨(31)가 운영하는 여성의류 유통업체 '다크엔젤'의 국내 매출은 연 20억원 수준이다. 일본, 대만 등 해외에서의 매출 규모는 국내를 능가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1월 무역의 날에 '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수상도 유력하다고 했다.

윤씨는 회사를 뛰쳐나온 뒤 충청북도 소재의 대원과학대학(현 대원대학)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다. 10대 때 공고에서 '별 생각 없이' 전기·전자를 전공으로 선택했던 것과 달랐다. 서양 미술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는데 이런 적성과 '돈 되는' 학문을 고려한 끝에 디자인 전공을 결심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05년. "20대에는 '책'보다는 '맨몸'"이라는 생각에 동대문 시장 의류유통 분야에 진출했다. 넉넉치 않았던 살림 때문에 유흥업, 사채업 등 '음지'에도 잠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남을 힘들게 하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사람이 옷을 입는 한 의류업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상경했다.


"동대문에서 일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정직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먹고는 살겠다고 생각했죠. 거기에 머리를 쓰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도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노력과 머리에 배움을 더한다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확신이 섰죠."

동대문 상인의 일주일은 치열하다. 주말을 챙기기도 힘들다. 유행, 소비자의 심리, 경기의 흐름 중 한 가지라도 놓치면 도태된다. 재빠른 상황파악과 현실감각도 필수. 한 눈을 팔 새가 없다. 클럽에서 스트레스 푸는 것을 즐기지만 잠 잘 시간은 줄여도 업무시간을 쪼갠 적은 없다.

특히 해외사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마다 세무, 무역, 관세 등에 관한 지식을 독학으로 쌓아왔다. 그는 맨몸으로 부딪친 뒤에 고비가 왔을 때는 책을 찾는 편이다.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배움 역시 필수라는 생각이다.

윤씨는 의류를 다루는 '재미' 덕에 지금까지의 삶을 버텨왔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던 여성의류라는 한우물만 팠다. 1남 5녀 중 막내로 자라온 영향도 있었던 탓인지 아기자기한 맛이 없는 남성의류를 다루는 것은 재미가 없었다. 앞으로도 자신의 관심사인 여성의류만 다룰 계획이다.

2007년에는 온라인을 통해 일본 진출을 시도했다.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촉'이 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동대문에서 일본 진출을 시도하는 상인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 '메이드인 동대문' 일본 진출 1세대인 셈이다. '다크엔젤'이라는 상호도 일본에서 먼저 사용했다.

사업 초반 고전했지만 동대문 의류가 '싸구려' 취급을 받을 옷들이 아니라는 확신에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일본 고객들이 동대문 의류의 재구매에 나서는 것을 보고 "됐다"는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온라인쇼핑 문화가 국내보다 2~3년 정도 뒤처져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분석 역시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일본에서의 실적이 국내보다 더 '짭짤한' 수준까지 성장했다. 일본 사업의 성공으로 해외진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이미 발을 담근 대만, 중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미국으로의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레깅스, 양말 등 체형에 덜 민감한 제품으로 승부를 볼 구상까지 마쳤다.

그는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삶의 무게'에 대한 자각을 꼽았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20대 때부터 책임감 있는 삶을 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부분에서 최근 젊은 사람들에게 아쉬운 부분 역시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단순히 돈과 성공을 따라간다면 가벼운 사람이 되겠지요. 항상 좋은 아들·남편·아버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평범한 가족을 꾸리는 행복도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