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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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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영권 기자
  • 2016.03.21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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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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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전시된 말 조형물. 받침대에는 "나는 말을 믿는다. 자동차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I believe in the horse. The automobile is a temporary phenomenon.)"라고 씌어 있다. 독일 제국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1859 ~ 1941)가 1905년 거리에 마차를 대체하는 자동차가 늘기 시작하자 했다는 이 말은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사진=메르세데스-벤츠 인스타그램
"나는 말을 믿는다. 자동차는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맨 꼭대기인 8층, 관람객의 동선이 시작되는 곳에는 실물 크기의 백마 조형물 받침대에 이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05년 독일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빌헬름 2세가 내연기관을 갖춘 새로운 탈것이 거리에 늘기 시작하자 남겼다는 말이다. 당시 신기술이었던 자동차는 말에 비해 속력이나 내구성 면에서 형편 없는, 그저 장난감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고트리프 빌헬름 다임러와 칼 프리드리히 벤츠, 헨리 포드 같은 이들에 의해 황제의 단견이 웃음거리가 된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전 인류는 100년 전 자동차가 말의 능력을 뛰어넘은 것에 비견할 만한 큰 사건과 마주했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운 바둑에서 인공지능(AI)이 인간 대표를 꺾은 것이다.

대국 이후 확산된 바둑과 이세돌에 대한 관심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 이번 대국은 이세돌이 아닌 AI 능력을 시험한 자리였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도 이세돌이 아니라 AI다.

인간이 악수라고 생각했던 알파고의 수가 결국에는 승리를 준비한 신의 한 수로 결론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앞으로 '이성의 간지(Trick of reason)'에 빗댄 'AI의 간지'라는 말이 유행할 법도 하다. AI는 게임을 뛰어넘어 언론과 금융, 의료, 법조뿐 아니라 군사, 정치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AI의 간지'를 경험한 이들은 AI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신봉할 것이다.

인류는 히틀러와 스탈린, 중세 기독교 지배층, 현대의 극단적인 회교도에 이르기까지 절대성을 신봉한 이들에게 시련을 당했다. '절대적인' AI의 뒤에 숨어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려는 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공상과학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AI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리는 만큼 악용을 막을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고민도 이뤄져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을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와 보행자 둘 중에 누구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에 답을 찾는 것이 그 시작이다. 군사적, 정치적 사용에 대한 윤리를 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런 점에서 이세돌이 졌다는 건 다행스럽다.

"나는 인간을 믿는다. 인공지능은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만약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다면 많은 이들이 이같은 신념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 신념은 급속한 변화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망명지 네덜란드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독일의 마지막 황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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