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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땐 '뽕나무 연구' 은퇴 후 '역사 해설'···평생 공무 수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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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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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9.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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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늘어난 중년, New Old] <13> 조장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해설가

지난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3층 ‘신안해저 문화재관’. 1984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신안선’에서 나온 유물 주위로 수십 명의 초등학생이 모여들었다. “이 배에는 고려인, 중국인, 일본인이 다 타고 있었어요. 장기간 배를 타고 가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장기도 두고 주사위놀이도 했지요. 옛날 사람들도 여러분과 똑같아요.” 조장호 도슨트(전시해설가·72)가 신안선에서 나온 고려시대 주사위와 장기알에 대해 설명하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했다. 조씨의 설명은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생생했다.

ⓒ33년간 농촌진흥청에서 좋은 뽕나무를 개발해 농민들에게 보급해온 조장호씨는 은퇴 후 유물을 통해 우리 역사를 학생들에게 해설해주고, 독거노인들에게 말벗이 되어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뽕나무 연구와 유물해설, 독거노인 돕기는 각각 다른 영역이지만 그 본질은 똑같다”며 “바로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33년간 농촌진흥청에서 좋은 뽕나무를 개발해 농민들에게 보급해온 조장호씨는 은퇴 후 유물을 통해 우리 역사를 학생들에게 해설해주고, 독거노인들에게 말벗이 되어주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뽕나무 연구와 유물해설, 독거노인 돕기는 각각 다른 영역이지만 그 본질은 똑같다”며 “바로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조씨의 설명은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생생했다. 그는 “오늘은 경남 창원에서 학생이 많이 왔다”며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을 직접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온 학생들이 내 해설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 전시해설가이다. 1주일에 1번 목요일마다 관람객들에게 인도·동남아시아관, 중앙아시아관, 중국관, 일본관, 신안해저 문화재관 등 아시아관의 다섯 개 전시관 유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경력 7년차 베테랑답게 그는 300여개 유물을 해설하면서도 헷갈리는 법이 없다. “반년 단위로 전시유물의 종류가 바뀌는데 그때마다 긴장하죠. 대입 수험생처럼 공부를 합니다. 제가 제대로 공부를 않고 설명하면 여기 오는 사람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밖에 감상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제대로 된 해설 없이 유물을 관람하면 ‘백화점에서 물건 사이로 지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씨는 농촌진흥청 잠업시험장에서 33년간 뽕나무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은퇴 이후에는 남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 정도였다. 그러다 우연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호주 노인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게 됐다. “우리나라로 치면 저처럼 할 일 없이 쉴 것 같은 노인들이 제복을 맞춰 입고 경기장에서 전세계 사람들 상대로 안내해주는 모습을 보고 ‘저거구나’ 싶었죠.” 조씨는 얼마 후 수원 월드컵경기장의 2002년 한·일월드컵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 응모를 했다. “뽕나무 육종과 재배를 위해 외국어로 쓰인 논문을 볼 일이 많았습니다. 또 평생 수원에서 태어나 학교를 졸업했고(조씨가 졸업한 서울대 농대는 당시 수원에 위치했다), 일터까지 수원에 있었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월드컵이 열리는 내내 경기장에서 외국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회봉사 활동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조씨의 눈에 다음으로 들어온 것이 서울 용산에서 2005년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해설 자원봉사 모집공고. 면접까지 보고 합격한 조씨는 아시아관 도슨트로 배치됐다. 당시 그는 한달 동안 학예사로부터 유물에 대해 배우고 암기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조씨는 “유물에 얽힌 이야기를 이해하고 암기하기 위해 당시 하루종일 자료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며 “그래도 농촌진흥청 시절에 수많은 보고서를 읽고, 수많은 종류의 뽕나무의 특징을 암기하던 습관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늙어도 머리를 써야 한다고 하잖아요. 덕분에 천천히 늙어갈 수 있는 거지요.”

ⓒ조장호씨가 초등학생들에게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신안선의 유물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든살이 넘어서도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설명해주는 도슨트 역할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조장호씨가 초등학생들에게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신안선의 유물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든살이 넘어서도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설명해주는 도슨트 역할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조씨는 유물 뿐 아니라 미술작품 해설에도 도전했다. 2007년에 반년 동안 서울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막스 베크만 프린트전’의 도슨트로 합격하면서 순수 미술품 해설을 맡은 것. 그는 “딸이 중학생이 됐을 때부터 주말이면 서울시내 미술관과 고궁에 딸을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현재 매주 목요일마다 하루 7시간을 꼬박 서서 100여명의 관람객들에게 해설을 한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지치기도 하지만 그는 “내 설명을 듣고 표정이 밝아지는 사람들을 보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고 말했다. “은퇴한 사람이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아무래도 외로움을 많이 느끼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고독감을 느낄 시간이 없어요. 교통비와 점심만 제공받지만 공부하고 해설하다보면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죠.”

그는 유물해설이 없는 날이면 독거노인을 돕는 자원봉사를 한다. 1주일에 3번씩 주민센터에 나가 독거노인들의 말상대가 돼주는 전화문안 도우미를 한다. 하루 30~40명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눈다.

조씨는 “뽕나무 연구나 유물 해설, 또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일은 모두 다른 영역이지만 내 마음가짐은 똑같다”고 말했다. “뽕나무의 좋은 품종을 개발하고 재배법을 연구해 농민들에게 보급하는 것이나 우리 역사를 국민들에게 알려줘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나 그리고 독거노인들을 도와주는 것이나 본질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자원봉사도 늘 공무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씨의 바람은 80세가 넘어서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해설가로 계속 일하는 것. 규정에 따르면 건강에 문제가 없고 박물관장이 허가를 하는 경우 80세가 넘어서도 해설가로 일할 수 있다. 그는 “요즘 초·중·고에서 국사를 덜 가르친다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며 “더이상 힘들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를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후 '도슨트'로 사는 법

작품에 대한 일반적 이해만 있으면 가능
박물관·미술관 양성과정·수시모집 활용

※도슨트 : 미술관과 박물관 등에 전시된 작품을 관람객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직업.

문화재와 예술작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은퇴 후 도슨트로서 삶도 고려해볼 만하다.

큐레이터가 작가 선정과 전시회 기획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도슨트는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만 있으면 가능하다. 1845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후 대중화됐다. 현재 국내 주요 국·공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 등에서 도슨트제도를 운용한다. 조장호씨가 일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교통비와 식비, 박물관 관람권한을 제공한다.

도슨트는 육체노동이 아니기에 대부분 연령제한이 없다.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도 내규상 ‘80세’라는 정년이 있지만 건강에 무리가 없고 박물관장이 허가하면 계속 활동할 수 있다. 현재 이 박물관 최고령 도슨트인 조씨는 “박물관에서 계속 교육을 받고, 배운 것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하다보면 내가 노인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린다”며 “건강관리를 잘 해서 80세 넘어서까지 아시아관 도슨트로 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해설 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은 전시유물이 바뀔 때마다 이뤄지는 교육과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으로 구성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분야별로 결원이 생기는 경우 수시모집을 하는데 모집사항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www.meseu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달리 정기적으로 도슨트를 모집하는 전시관도 있다. 25일 현재 백남준아트센터(//www.njpartcenter.kr)에서 10기 도슨트를 모집한다. 이밖에 서울대학교 미술관(//www.snumoa.org) 한국영화박물관(//www.koreafilm.or.kr/museum) 등도 매년 정기적으로 도슨트를 모집해 관람객들에게 해설서비스를 제공한다.

일정기간 교육과정을 통해 도슨트를 양성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www.poma.kr) 경기도미술관(//www.gma.or.kr) 국립현대미술관(//www.moca.go.kr) 등이 도슨트 양성과정을 모집한다.

조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국립중앙박물관 도슨트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한 지 7년째”라며 “인터넷을 자주 보며 비정기적인 전시회라도 도슨트 모집공고가 뜰 때마다 확인하고 지원해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영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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