쩔쩔매는 스트로스-칸, 자신만만한 윤증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에 대한 IMF의 정책 처방이 일부 잘못된 측면이 있다"(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IMF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이나 거시 경제 안정을 위해 제대로 역할하지 못하고 있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과거 잘못된 정책처방을 시인한 스트로스-칸 총재와 IMF의 잘못을 가차 없이 꾸짖은 윤 장관의 상반된 모습은 욱일승천하고 있는 아시아의 기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1997년 한국, 태국 등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 당시 보여줬던 마치 점령군과 같았던 IMF의 고압적인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획재정부와 IMF가 12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공동 주최한 '아시아 21 : 미래경제의 선도적 주체'(Asia21 : Leading the Way Forward)' 컨퍼런스는 '아시아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IMF 컨퍼런스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세계경제의 주체로 떠올랐고 그 중에서도 한국이 아시아의 중심국가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개막 연설에서 "아시아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아시아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동력으로 떠올랐다"고 선언했다. 윤 장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의 역내 협력을 강화해야할 필요성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장관은 환영연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IMF가 개도국의 경제 발전이나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역할을 소홀히 해 왔다"고 지적했다. IMF가 선진국 위주로 운영되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개도국들의 지원에 소홀했으며 과거 외환 위기에서도 제대로 된 정책적 처방을 내놓지 못한 점을 정면 비판한 것.

윤 장관의 이 같은 지적은 세계경제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경제 분야 프리미어포럼 역시 주요 8개국(G8)에서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가 대거 포함된 주요 20개국(G20)으로 자리를 내준 것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실제로 IMF는 그동안 선진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면서 선진국의 정책적 처방을 신흥국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IMF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자금난을 겪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고금리 정책을 비롯한 과도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해 대량 실직과 기업파산 사태를 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계기로 G20 체제가 출범하고 한국이 G20 의장국을 맡는 등 신흥국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IMF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도 IMF 쿼터 조정 등을 통한 국제기구내 신흥국의 역할 증대 등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개도국으로 5% 쿼터 이전 등 국제기구 개혁은 오는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확정된다. IMF로서는 서울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의 눈치를 볼 수 밖 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의식한 듯 IMF의 역할 변화를 촉구하는 윤 장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반면 스트로스-칸 총재는 수세에 몰렸다. 그는 "외환위기 당시 IMF로부터 정책 처방을 받은 국가들이 필요 이상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덜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IMF는 이 경험을 통해 취약층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배웠다"고 애써 해명했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다만 "IMF의 정책적 처방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 금융위기에서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뛰어난 회복력을 보였다"며 IMF의 존재 의의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