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진출 '덫'으로…연결고리 끊을까

대한전선 (13,800원 ▲1,500 +12.20%)이 2000년 이후 그린 청사진은 '세계 최고의 전선사로서 종합적인 전력 인프라 사업이 가능한 기업'이 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이 그룹이 무리수를 써가며 세계 1위 전선사 프리즈미안 인수를 추진하고 동시에 복수의 건설사를 사들인 것은 적어도 경영진 입장에서 만큼은 무분별한 인수합병(M&A) 전략이 아니었다. 전력 인프라 투자가 예상되는 이머징 마켓에 진출해 토목과 전력망 설비 발주를 턴키로 받아 이익률을 최대로 높이려던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이 갖고 있던 건설업 진출 계획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전을 시작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당시 인수 계획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두산그룹이 딜에 참여해 입찰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M&A를 통해 건설업을 키우려는 시도가 시작됐고 뒤이어 매물이 쏟아졌다.




대우건설을 포기한 대한전선은 이듬해 극동건설 인수전에 좀 더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진로의 부실채권(NPL) 인수로 4000억 원 가량의 수익을 본 이후라 한층 건전해진 재무상황이 든든한 뒷받침이 됐다. 하지만 5000억 원 가량의 자금을 보유하고 뛰어든 인수전에서 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웅진그룹과 STX그룹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입찰가격이 7000억 원대로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조바심이 난 경영진은 그 해 말 학교법인 명지학원 소유 건설사였으나 자본잠식이 됐던 명지건설(현 TEC건설)을 495억 원에 전격적으로 사들였다. 명지건설은 토목 업체로 볼 수 없지만 무주리조트와 당진공장, 남부터미널 등 계열사 공사 물량이 있어 개발 및 시공 이익을 확보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가벼운 타깃을 택한 것이다.

이후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다수의 업체가 매물로 나오자 대한전선은 사실상 '쇼핑'에 가까운 M&A를 실행했다. 알덱스 계열을 사들여 남광토건을 확보했고, 영조주택에 자금을 대여해 담보를 차지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원대한 비전을 위해 늘린 건설업 익스포저는 2008년 말부터 금융위기가 악화되자 '날선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과중한 차입금에 대한 이자부담이 몰리는 상황에서 계열사가 된 건설사들의 부실이 커지면서 추가적인 자금소요가 발생했다.

TEC건설은 인수한 지 1년 만에 자본잠식에 빠져 600억 원의 증자를 단행해야 했다. 남광토건의 경우 2대 주주였던 차종철 회장 등과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서 정상적인 영업을 수행하지 못했다. 영조주택에는 2565억원의 대여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시흥과 명지, 신호지구의 개발 사업이 전국적인 미분양 사태로 진전되지 못하면서 부실 사업장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난 상반기 말을 기준으로 대한전선이 보유한 건설 사업군의 내용은 △TEC건설(69.3%) △남광토건(22.5%) △티이씨앤코(56.1%) △티이씨앤알(67.5%) △NT개발1차PFV(95%) △ALD1차PFV(47%) △시흥동복합PFV(46%) 등이다. 이들 사업군의 총 자산은 2조5579억 원, 부채는 2조1109억 원 수준이다.

자산에 비해 부채가 그리 많은 건 아니지만 문제는 사업들이 부실화되면서 7개 사업 주체가 모두 당기 순손실(총 1353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덩치가 큰 남광토건이 채권단과 화의(Work-out) 절차에 들어갔고 김포 지구의 프로젝트 파이낸스(PF) 주택 사업이 1조 원의 잠재 부실로 지적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한전선은 남광토건을 매물로 내놓아 부실의 연결고리를 끊고 나머지 부동산 사업장을 팔아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남광토건은 대한전선이 보유 지분을 담보로 내놓아 사실상 채권단 관리 아래에 놓였고, 현금화가 가능한 시흥동 공장부지와 서초동 남부터미널 부지 공개매각도 추진되고 있다.

그룹 측은 공매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4400억 원 가량(시흥 공장 2400억 원, 남부터미널 2000억 원)의 자금이 추가로 유입돼 건설업 우발채무도 상당 부문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유상증자로 확보한 3250억 원에 공매 자금을 더해 부채를 줄이면 이 그룹의 순차입금은 1조 원 중반까지 내려가게 된다.

또 대한전선과 오너 일가는 계열사 노벨리스코리아 상장(IPO)을 통한 1000억 원 이상의 현금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거래소가 이 딜의 재심의를 요구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있지만 시장 분위기는 호의적이다.

특히 최근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새 경영진은 올해 두 차례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성공시켜 고비를 넘겼다는 분석이다. 적극적인 재무개선 작업을 통해 400%에 가까웠던 부채비율도 최근 280%대까지 떨어져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전선에 대한 전망은 이렇게 낙관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남은 건 오너 일가와 경영진의 추가적인 계획 실행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