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김두관이라고 대선 출마 못하라는 법 있나"

ⓒ사진=이동훈 기자

백공일과(百功一過)! 백가지 잘해도 한 가지 잘못하면 일을 그르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한해를 이 말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난해 원내대표로 취임해 '대화정치'로 많은 성과를 냈지만 예산안 강행처리 사태로 국회가 파행으로 끝나 전체 평가는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게 됐다는 자조 섞인 말이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이뤄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도 여당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대북 정책과 관련해) 이제는 기대를 접었다"고 했다. 현 정부의 무능을 분야별로 조목조목 지적하기도 했다. 새해에도 한동안 냉각기가 불가피함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자신이 말하는 모든 정책이 만인의 축복 속에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박 원내대표는 그러나 "네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생각이 중요하다"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항상 되뇐다고 했다. 국민 요구가 있다면 언제든 '대화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당원들이 내게 뭘 맡으라고 한다면 맡을 수 있다"고 말해 당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뒀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서는 "이광재라고 차기에 못한다는 법이 없지 않나"라는 말로 후보 주자군을 넓게 잡았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2010년 한 해를 보낸 소회를 말해 달라.


▶유난히 자연재해가 많고 일상생활이 불안한 한 해였다. 김치파동이나 구제역 등으로 국민은 편안하지 못했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도 있었다.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미국에는 자우무역협정(FTA)으로 퍼줬고 중국과는 불편한 관계가 됐다.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통일·민족 문제에 한 치의 역할도 못 하면서 3년을 보냈다. 금융위기라면서 빚을 내서 흥청망청 써 국가재정은 파탄 났다.

그런 상황에서 소수 야당인 우리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대화해 세종시 수정안을 저지했다. 한나라당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두 번이나 밀어붙이려 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논리적 설득으로 막아냈다. 스폰서검사는 결국 특검을 해냈고 '그랜저 검사'는 재수사를 끌어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효성그룹 3세 비리 의혹 등 권력 주변부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해 수사 받게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4대강 예산을 대통령이 날치기 해버렸다. 우리는 군소정당이다. 국민은 '이기되 싸우지 말라'고 하고 시민사회단체나 종교계는 '싸워서 이기라'고 하는데 그 괴리가 정말 컸다. 백공일과다. 백가지 공을 세워도 한 가지 과오를 하면 모든 게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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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정치, 상생정치의 문은 닫은 것인가?

▶상대가 우리를 짓밟지 않았나? 그것을 원상복귀하고 대화를 해야 한다. 짓밟아 놓고 같이 살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이 날치기한 예산법안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도 구제역 때문에 상임위 개의를 포함해 국회 논의가 불가피하지 않나.

▶그렇다. 1월 초쯤에 상임위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민생 법안 40개를 같이 논의하자고 하는데 이건 예산안 처리 전에 우리가 먼저 논의하자고 한 것이었다. 민생은 중시한다면서 왜 이 법안들은 날치기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올해도 안보가 계속 논란이 될 것 같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이명박 대통령은 민족문제나 대북문제에 있어 철학이 없다. 과거에는 '기다리는 것도 정책'이라고 해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역시 이 사람은 안 되는 사람이구나' 싶다. 이 대통령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왜 전쟁을 하려고 하나. 전쟁을 안 하고 평화를 지키는 게 제일 큰 승리다.

- 복지 또한 큰 주제다. 최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한국형복지'를 들고 나왔는데, 세종시 수정안처럼 함께 논의해볼 여지가 있지 않나.

▶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형 민주주의'를 들고 나와서 유신독재로 갔다. 그럼 '박근혜형' 복지는 뭘 의미하겠는가. 복지는 예산이 수반돼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표는 복지예산이 삭감됐을 때도 아무 말 하지 않던 사람이다. '박근혜표 복지'는 예산이 안 드는 것인가. 예산이 언급되지 않는 복지는 속빈 강정일 뿐이다. 박 전 대표도 자신이 말하는 모든 정책이 만인의 축복 속에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책을 내면 비판과 평가 속에서 검증을 받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기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서 검증 받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늘 불리한 말이 나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유리한 말 나오면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특정 후보를 지지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박 원내대표 스스로 출마할 가능성도 점친다. 대선정국에 임하는 원칙을 말해 달라.

▶'나를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이미 역사적·정치적 사명을 다 했다. 내가 당 대표가 된다든지, 대선 후보가 된다든지 하는 얘기는 불필요한 얘기다. 민주당의 집권을 위해 열심히 일할 뿐이다. 집권한다면 (청와대) 수위라도 하고 벽돌이라도 나를 것이다. 당원들이 내게 뭘 맡으라고 한다면 맡을 수도 있지만 내가 뭘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도 아침에 눈을 뜨면 김대중 대통령에게 묻는다. 김 대통령은 '박 실장, 네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중요한 거다. 국민의 손을 놓지 말고 설득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국민이 원하면, 그것이 원칙이라면 지키라고 하신다. 죽더라도 원칙은 지키라고 하신다.

- 차기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은 무엇인가. 당내 486(나이 40대, 1980년대 대학 입학, 1960년대 출생) 그룹의 대권 도전 가세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차기 지도자는 첫째 야권연대를 통한 후보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폭넓은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가 위기에 처한 만큼 남북문제에 탁월한 견해와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셋째 민생경제, 청년일자리 문제 등 국민의 어두운 곳을 밝혀 줄 수 있는 휴머니티(인간애)를 가진 경제전문가가 필요하다. 이광재 강원도지사, 김두관 경남도지사라고 해서 차기에는 못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 야권 연대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당대 당 통합은 꽤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그게 바람직하긴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후보 연대가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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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려면 어떤 점에 중점을 둬야 할까.

▶민주당은 좋은 역사와 좋은 정체성, 좋은 위업을 가졌다. 60여 년 전 한나라당의 전신인 자유당이 독재정치를 할 때 우리는 민주정치를 부르짖었다. 그들이 관치독점경제를 할 때 우리는 시장경제를 들고 나왔다. 그들이 북진통일을 주장할 때 우리는 평화통일을 외쳤다. 신 군부가 일어날 때 김대중이란 불굴의 지도자가 사형도, 감옥도, 연금도 마다하지 않고 투쟁해 아시아 최초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뤘다. 또 노무현이란 거의 무명에 가까운 대선 후보를 픽업해 정권을 재창출했다.

이에 반해 현재 여당과 대통령을 보라. 여당 대표가 보온병 얘기를 하니까 (민심이) 확 돌아섰다. 게다가 젊은 여성을 '자연산'에 비유했다. 애들도 따라가면서 '자연산!' 이라고 한다고 그러더라.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이나 하려하고 있다. 전쟁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연평도에 포격을 당하고 엉뚱한 곳에 포를 쏘는 것은 무능한 국방 아닌가. 무능한 경제, 무능한 안보, 무능한 예산, 무능한 구제역. 뻥뻥 뚫리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 막고 있다.

-현안이 터질 때마다 촌철살인의 표현이 빛을 발했다. 비결을 말해 달라.

▶매일 신문을 정독한다. 이동할 때는 방송을 본다. 그러면서 오늘의 주제를 선정한다. 다른 사람들은 길게 써서 읽지만 나는 노트에 짤막하게 메모만 해서 그걸 보고 말을 한다. 쉽고 꼭 (언론에) 나갈 말만 쓰려고 노력한다. 문장을 짧게 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