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업계, 원자재 보다 전기요금이 무섭다

머니투데이

임동욱 기자

최근 석유화학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전력요금에 아주 민감하다. 신사업 진출이나 증설 때 전기가격에 대한 고려를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력요금이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탓이다.

올해 국내에서 탄소섬유사업을 본격화하는 도레이첨단소재가 대표 사례다. 닛카쿠 아키히로 도레이 사장은 올해 방한한 자리에서 아시아 탄소섬유사업의 거점으로 중국 대신 한국을 선택한 이유로 "중국보다 한국의 전기가격이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탄소섬유는 프리커서라는 아크릴섬유를 전기로 태워 만든다. 제조원가에서 전력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도레이 측은 "한국의 전기가격이 일본보다 50%, 중국과 비교해도 30~40% 싸다"며 "한국에서 보다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한전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산업용 전기료는 1㎾h당 0.058달러로, 이탈리아(0.276달러)의 5분의1 수준이다. 일본(0.158달러) 영국(0.135달러)에 비해선 각각 36.7%, 43.0%며 미국(0.068달러)보다는 15% 저렴하다.

문제는 전력요금 인상이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전력요금이 생산원가의 93.7%에 불과해 최근 3년간 발생한 누적 순손실이 3조995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유화업계는 전기가격이 올라가면 큰 부담이 된다. 폴리실리콘사업 진출을 적극 검토 중인 한화케미칼은 대량생산라인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 둘 계획이다. 폴리실리콘 원가의 30%가 전력요금이어서 한국보다 가격이 낮은 곳에 공장을 지어야 경쟁력이 있다는 계산에서다.

가격뿐 아니라 안정적인 전기공급도 중요하다. 올해 초 전력사용량 급증으로 예비전력이 400만㎾ 근처까지 떨어지면서 전력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지난달 28일 국내 21번째 원전인 신고리1호기(1000㎿급)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면서 다소 숨통이 트였다.

사정이 이렇자 그룹 총수까지 '해결사'로 나섰다. 지난해 9월9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자오홍주 저장성 당서기를 만났다. 그는 저장성 정부의 협조로 닝보 PVC공장 건설이 순조롭게 끝난 데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전기를 안줘 공장을 못돌리면 누가 (중국에) 들어오겠느냐"며 정중히 항의했다.

전력부족 등에 시달리던 중국정부가 전기를 주지 않아 한화는 공장을 완공하고도 3개월간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상황이다. 김 회장의 방문 이후 비로소 공장에 전기가 공급됐다는 후문이다.

홍기준 한화케미칼 사장은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전기공급이 제한되니 죽을 맛이었다"며 "밖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