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마신 '경유 소주' 왜? 미스터리의 재구성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충북 청주의 한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참이슬 소주를 마시던 이모씨는 소주병 겉면은 물론 병 안에서까지 심한 경유 냄새를 느꼈다.

이 씨는 곧바로 인근 청남경찰서에 신고했고, 청남경찰서는 이 음식점에서 15병의 참이슬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이중 11병은 병 뚜껑조차 따지 않은 제품이었다. 4병은 이 씨 일행이 병 뚜껑을 개봉한 후였다. 국과수 조사 결과 15병 중 8병의 제품에서 경유가 검출됐다. 소주 겉면은 물론 소주 원액에까지 경유 성분이 들어있었다.


경찰은 왜, 어떤 경로로 소주에 경유 성분이 유입됐는지 원인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 수사는 2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소주 제조 공정에서 경유가 들어갔을 수 있는지 여부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 대해 소주 제조사인 하이트진로는 "가능성이 제로"라고 주장했다.

◇소주 공장엔 '경유' 한 방울도 안 쓰는데 어떻게 들어갔나?


국과수에서 경유가 검출된 소주 제품은 지난 1월23일 밤 7시30분에 하이트진로 충북 청원공장에서 제조한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경유 검출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생산일자에 똑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든 참이슬 제품들을 수거해 자체적으로 경유 성분 여부를 검사했다. 그러나 다른 제품에서는 경유가 일절 검출되지 않았다.

하이트진로는 특히 청원공장 안에서는 단 한 방울의 경유도 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공장내 모든 생산설비가 자동화돼 있는데 경유가 아닌 전기로 가동된다"며 "공장 난방도 경유를 전혀 쓰지 않는 방식이어서 공장 내부에는 경유가 한 방울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공장에서는 경유를 아예 쓰지 않는데 제조 과정에서 경유가 유입됐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조 과정에서 또 다른 경유 함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 주류업체들은 소주 공병을 재활용하고 있는데 이전에 소주가 아닌 경유를 담아놓았던 공병이 재활용되는 과정에서 충분히 세척되지 않았다면 소주병 안에 경유 성분이 검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류업계는 "가능성이 0%"라고 밝혔다. 하이트진로가 아닌 또 다른 주류업체 관계자는 "현재 공병은 모든 소주업체들이 마찬가지로 고압으로 자동 세척하기 때문에 이전에 경유를 담았던 병이라고 해도 병 겉면이나 병 속에서 경유 성분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밀폐된 장소에 경유와 함께 소주 보관 했다면 "가능성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주병 안에 경유 성분이 유입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주 유통과정에서 경유가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수사도 앞으로 이 점에 주목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이트진로는 "공장에서 나온 참이슬은 주류도매상을 거쳐 해당 음식점으로 유통됐다"며 "주류도매상 창고나 음식점 소주 보관 장소에서 경유 성분이 함유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유가 공기 중에서 기화해 소주병 겉면은 물론 병 뚜껑을 뚫고 병 속 원액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류업체들은 소주를 경유 같은 석유류와 같은 창고에서 보관할 경우 병 겉면에 경유가 묻는 것은 물론 소주 원액에서도 석유 냄새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유의 휘발성이 워낙 강한데다 소주병의 뚜껑에는 기체가 통과할 수 있도록 미세한 구멍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휘발된 경유가 소주병 속으로 충분히 유입될 수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도 "소주와 석유류는 밀폐된 장소에서는 절대로 함께 보관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실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지난 2005년 전남 광주에서도 벌어졌다. 당시 최모씨 등 일행 4명은 광주 동구의 한 음식점에서 A소주를 맥주잔에 담아 마셨는데, 소주에서 석유 냄새가 강하게 났기 때문에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소주 제조과정에서 석유가 유입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일부러 소주에 석유를 넣은 흔적도 찾지 못했다. 당시 사건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수사가 종료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이번 경유 성분 유입은 경유를 전혀 쓰지 않는 제조과정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며 "경찰이 조속히 정확한 원인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경유 소주'의 원인이 제조공정의 숨은 실수 때문인지, 유통과정의 문제 때문인지 경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