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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에 등장한 내란음모…21세기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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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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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승섭 기자 =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회동향연구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당국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관계자들의 내란 음모 혐의를 포착해 통합진보당 소속 인사의 자택과 사무실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2013.8.28/뉴스1  News1   유승관 기자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사회동향연구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당국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관계자들의 내란 음모 혐의를 포착해 통합진보당 소속 인사의 자택과 사무실 10여곳을 압수수색했다. 2013.8.28/뉴스1 News1 유승관 기자

국가정보원이 28일 이석기 의원 등 통합진보당 핵심관계자들에 대해 전격수사에 나서면서 여의도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그동안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해왔던 금품수수나 공직선거법 위반, 성추문 스캔들이 아니라 체제전복을 목표로 수년 동안 반국가 활동을 한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등에게 적용된 혐의는 '내란음모'. 이같은 범죄혐의가 적용된 것은 1980년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33년만에 처음이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은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민주정부수립 이후 이 같은 혐의가 적용돼 공안당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2000년대 들어 정치인이 연루된 일심회·왕재산 사건 등 대형공안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때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만 적용됐을 뿐 내란음모까지는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란음모혐의가 적용된 사건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다. 이 사건은 1980년 7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등 신군부 세력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고(故) 김 전 대통령 등 민주세력 인사 24명을 지목, 구속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계엄사 당국은 김 전 대통령이 '집권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사조직인 민주연합 집행부에 복학생을 흡수, 학원조직을 연결시켜 서울대·전남대생 등에 총학생회장 선거자금 또는 대모자금을 지급하고 자신의 출신지역인 호남을 정치활동의 본거지로 삼아 다른 지역에 앞서서 학생시위와 민중봉기가 이뤄지도록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계엄사 당국은 또 김 전 대통령이 '광주사태가 악화되자 호남출신의 재경(在京)폭력배 40여명을 광주로 보내 조직적으로 폭력시위를 주도토록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반공법·계업법·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문익환·이문영·예춘호·고은태(고은)·김상현·이신범·이해찬 등도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부 결정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은 징역 20년까지 감형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2년 7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김 전 대통령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200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문익환 목사 등도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70년대에 발생한 내란음모 사건으로는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불리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을 꼽을 수 있다.

안기부는 1964년과 1974년 두차례 인혁당사건을 발표했다.

1차 인혁당 사건은 64년 8월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 중에 있다"고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의 기소과정에서 결국 57명의 구속·수배자 가운데 13명만 기소됐는데 적용혐의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동조'에 관한 반공법 4조 1항 위반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내란음모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1974년 4월 터진 2차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에는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됐다.

중앙정보부는 당시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이들이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유신 2년째인 74년은 재야단체, 학원가의 반체제 데모가 잇따르고 일부 언론인, 교수, 종교인, 재야인사들이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개헌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던 시기였다.

민청학련 1024명이 연루된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서 253명이 구속송치됐고 이 가운데 인혁당 관련자 21명,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80여명이 긴급조치 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의 죄명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다.

75년 2월 이철, 김지하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대부분 감형 또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결국 75년 4월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고 국방부는 재판이 종료된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었다고 밝히면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했다.

이밖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씨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 혐의로 기소됐고, 1997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기소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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