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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피해 유가족의 절규…"내 딸은 내연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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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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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30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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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대한송유관공사 여직원 살인사건 피해자 어머니, "성폭행 혐의 추가 고소할 것"

'유부남 피고인 이모씨(당시 38세)는 내연관계인 직장 후배 황모씨(당시 22세)가 다른 남자를 만나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경기 양평군 옥천면으로 끌고가 넥타이로 목졸라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2005년 6월 1일. 대한송유관공사 인사과장의 여직원 살인사건의 한줄 요약이다. 핵심 키워드는 '내연관계'. 법원은 이씨에게 살인 및 시체유기로 12년형을 선고했다.

살인자의 손에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 유모씨(56)는 9년을 투사처럼 살았다. 평범한 주부는 어느새 증거의 진위를 가려내고 사인을 추적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제 어머니는 사건을 재조명할 준비가 됐다고 했다.

"내 딸은 유부남의 내연녀가 절대 아닙니다. 딸은 인사과장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계획적으로 납치돼 성폭행 및 살해를 당했습니다." 어머니의 주장에 따라 사건을 재구성했다.

◇'내연' 증거는? 하나씩 깨지는 판결의 근거들


이씨 측 변호인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메모'라며 '내연'의 증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제시한 자료.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증 결과 황씨가 작성한 메모가 아님이 드러났다. 피해 유가족이 사설 검증 기관에 의뢰한 결과 이씨가 '자작'한 메모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자료=살인피해 유가족 제공
이씨 측 변호인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메모'라며 '내연'의 증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제시한 자료.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증 결과 황씨가 작성한 메모가 아님이 드러났다. 피해 유가족이 사설 검증 기관에 의뢰한 결과 이씨가 '자작'한 메모라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자료=살인피해 유가족 제공
#1. 조작된 연애편지

감사하세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는 단 한사람을 알게 됐음을 감사하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어긋나지 않고 계속 만날 수 있음을 감사하세요.

- 이씨의 변호사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전해준 메모'라며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편지 일부.

또박또박 써내려 간 '감사하세요'라는 제목의 메모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증명하는 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메모를 본 어머니는 "딸의 필체가 아니다"라고 확신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메모와 황씨의 노트 필적을 비교한 결과 '상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가 사설 필적조사기관에 의뢰한 결과 메모는 살인범 이씨가 쓴 것으로 드러났다. 조작된 증거였다.

2008년 4월 18일 피고인측 담당 변호사는 "황씨가 작성한 것이 아님이 확인되었음에도 변론요지서에서 메모 부분과 참고자료를 철회하지 않았다"고 잘못을 시인하는 자인서를 썼다.

#2. 직장 동료이자 남자 친구였던 A씨의 거짓 증언

이씨가 황씨를 끌고간 날, 목격자가 있었다. 직장 동료이자 남자친구였던 A씨(당시 32세). 그는 사건 당일 밤 야근을 마친 황씨를 회사에서 버스정류장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이를 이씨가 미행해 뒤쫓았고 A씨와 승강이를 벌인 뒤 황씨를 양수리로 끌고가 일을 냈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사건이 나기 5일 전 황씨가 '이 과장과 사귄다. 그런데 헤어지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내연관계'로 판단할 만한 증언이었다. 자신은 "황씨와 전화통화만 하는 사이"라고 관계를 부인했다. 자신의 여자친구가 "직장 상사와 사귀었다"고 증언한 것.

A씨의 진술 일부가 허위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007년 '위증죄'로 기소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A씨는 "무섭고 떨려서 사건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는 "A씨가 이씨에게 '황씨를 계속 괴롭히면 회사에 까발리겠다. 사회에서 매장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극단적인 사건에 단초를 제공하고 위증까지 해 사건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다.

어머니는 또 이씨가 회사 전산공지에 '송구합니다, 미안합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동료에게 "밤 10시면 결론이 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사실도 밝혀냈다. 당시 황씨가 야근을 마친 시각은 밤 10시.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는 어머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3. 무시된 증언

황씨의 친구인 B씨의 증언을 보면 황씨가 얼마나 이씨를 두려워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씨가 황씨의 사적인 부분까지 관여하며 집착한 정황도 포착된다. B씨의 증언은 판결에 인용되지 않았다.

B씨는 "황씨가 회사에서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이씨가 아주 못마땅해 하고 괜히 찾아와 화를 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황씨가 전화기를 꺼 놓거나 안 받아도 이씨가 화를 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또 "이씨가 전처와 이혼을 하고 회사 비서실 여직원과 재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사실을 숨기고 황씨에게 또 다시 접근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며 "단순 동료도 아닌 회사를 대표하는 인사과장이 그런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친구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딸이 '내가 이 회사에 취직된 게 기적 같다'고 자주 말했다"며 "인사과장인 상사가 구애하며 괴롭히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를 그만두게 될까 두려워 혼자 해결하려다 변을 당한 것"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사건 곳곳에 구멍 "처음부터 다시 수사해야"

#1. 의혹투성이 수사 결과

국과수 부검에서 황씨의 사인은 '경부압박 질식사'로 나타났다. 어머니는 사체에서는 넥타이에 졸렸을 때 나타나는 둥그런 '삭흔'이 없다고 지적했다. 목에 끈을 두르고 조르면 그 자국인 삭흔이 남는다. 보통 이 모양을 보고 범행 도구를 추정한다. 사체는 조용히 목을 졸렸다기 보다는 오히려 피와 멍으로 뒤덮인 모습으로 발견됐다.

'범행 현장'이라던 이씨의 싼타모 차량도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차량 안 문짝과 천장에는 혈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간단한 조사 후 차량을 이씨의 가족에게 되돌려줬다. 어머니는 이씨의 재산 가압류 과정에서 차량을 인계해 7년째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재조사' 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씨가 황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이씨 소유 차량. 잠자는 황씨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진술과 달리 차 곳곳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황씨의 어머니는 사고 재수사에 대비해 차량을 7년째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사진=황씨 어머니 제공
이씨가 황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이씨 소유 차량. 잠자는 황씨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진술과 달리 차 곳곳에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황씨의 어머니는 사고 재수사에 대비해 차량을 7년째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사진=황씨 어머니 제공

#2. 성폭행 혐의, 수사 대상도 아니었다.

황씨의 사체는 브레지어 끈은 풀어지고 팬티 뒷부분은 흙에 짓이겨진 상태로 발견됐다. 상의에 걸쳤던 흰색 카디건은 사라졌다. 목을 조른 것 이상의 구타 흔적, 성폭행 정황이 남았지만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사라진 카디건과 사체의 몸을 닦은 흔적 등에 대해서도 속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상의는 피에 흥건히 젖어 있었지만 상체는 의도적으로 닦아낸 듯 깨끗했다. 팬티도 일부러 흙에 뭉갠 것처럼 유독 더럽혀져 있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 황씨의 몸에서 정액이 검출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옷이 모두 벗겨지고 말려올라간 상황에서 성폭행 관련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볼에 뽀뽀만 했다'는 이씨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당시 강원 원주경찰서 수사 팀장은 "피의자에게 2~3차례 조서를 받으면서 성폭력과 폭력에 대해 추궁했지만 부인했다"며 "체포 후 수사기일이 10일로 한정돼 있어 촉박하지만 최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3. 경찰, '내연관계' 증명에만 촉각

어머니는 경찰이 처음부터 '내연관계'로 각을 세우고 짜 맞춰 나갔다고 토로했다. 내연관계와 질투로 인한 살인 외에는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경찰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잠을 자는 황씨에게 화가 나 목을 졸랐다"는 이씨의 진술을 빌어 현장 검증에서 차에서 다리를 베고 잠을 자는 모습을 재연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건 현장 검증이 아니라 '내연'을 증명하는 엉터리 수사였다고 말했다.

'내연관계'라는 단어는 다방면으로 유탄을 남겼다. 살인은 손쉽게 '개인사'로 치부됐다. 성남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적관계에 기인한 살인사건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족보상 및 장의비청구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회사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다. 회사는 사건 발생 8년 후에야 '위로금 지급 합의서(안)'를 내밀었다.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당사자 이외에 제3자에게 (합의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1억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거부했다. "요구 금액을 불러보라"는 말에 "100억원"이라고 답했다. 어머니가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고 했다. 죽은 딸의 명예회복이자 진정한 사과다.

◇살인죄로 복역 중인 범인, 일사부재리 넘어 추가 고소 가능할까

어머니는 이씨가 아직 '성폭행' 등 혐의에 대해서는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한국피해자지원협회의 도움을 받아 이씨에게 '성폭행특별법'을 적용해 추가 고소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미 살인죄로 복역중인 이씨를 추가 고소할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한 번 처벌받은 죄를 다시 묻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일사부재리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에 따라 사건의 시각과 장소, 죄질이 동일하면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재판이 끝나면 다시 처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법인권사회연구소 이창수 위원장은 "일사부재리가 공소사실에만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며 "사건의 내막을 살펴봐야겠지만 보기에 따라 강간죄는 살인과 무관해 별도의 사건으로 보인다"고 의견을 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손정혜 인권이사는 "강간죄와 살인죄(강간 후 살인의고의)라는 두 행위가 서로 다른 죄를 구성한다면 추가로 처벌이 가능할 수 있다"며 "동일한 사실관계(강간살인고의)라면 이미 처벌된 것으로 판단돼 일사부재리 원칙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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