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매가 살고있는 푸른밤 제주도, 고립을 위한 이들의 땅"

그룹 들국화의 최성원은 2011년 제주도로 내려와 새 삶을 시작했다. "앞으로 도시 생활은 접겠다"고 선언한 그는 '덜 오염된' 제주도에서 자라난 자연의 기운으로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사진(제주도)=김고금평기자

기자가 빌린 신형 소나타 렌터카가 궁금했는지, 그가 직접 핸들을 잡겠다고 했다. “오, 이거 성능 좋은데?” 어린애처럼 호기심어린 눈으로 차안 구석을 다 훑고 난 뒤에야 그는 ‘제대로’ 밟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은 아티스트를 바라보는 조수석의 느낌, 참 묘했다.

달리면서 그가 말했다. “내가 잡기에 능하고 잡기를 좋아하거든. 제주도가 레저의 천국이지. 일단 걷기부터 자전거, 모터사이클, 등산, 스노클링, 윈드서핑, 요트, 승마까지 못하는게 뭐 있겠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청정한 구역이잖아요. 공장이라는게 없으니까.”


올해 환갑인 그룹 들국화의 최성원은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에 비견될 만큼 탁월한 작곡 능력을 갖춘 뮤지션이다. ‘그것만이 내세상’ ‘제발’ 같은 가슴을 울리는 묵직한 선율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들국화가 해체된 이후 솔로로 낸 그의 음악들을 곱씹어보니, 역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곡 ‘제주도의 푸른 밤’이 스쳤다.

‘그 곡(10, 20대들은 리메이크한 성시경의 곡을 원곡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제주도 관광객이 늘었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그는 “허허, 덕 좀 보고 있다”고 웃었다.
이 곡은 1987년 들국화 해체 이후 멤버들이 대마초 사건으로 끌려간 후 마음이 안좋아 찾은 제주도의 밤 풍경을 보고 지은 것이다.

“당시 노사연의 ‘님 그림자’를 만든 김욱 형에게 제주도에서 보름간 신세를 진 적이 있었어요. 어느 날, 서귀포 칼 호텔에서 프로그램을 마친 형과 집으로 걸어오는데 진짜 밤이 푸르더라고요. ‘이게 왜 그런가’하고 물었더니, 형이 ‘가끔 그래’ 하더라고요.”


최성원은 형의 딸 푸르매에게 ‘서울가서 너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가사에 이렇게 적었다. ‘정말로 그대가 재미없다 느껴진다면/떠나요 제주도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

노래는 지금 들어도 일품이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제주도 푸른밤 그 별 아래/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지쳤잖아요/술집에 카페에 많은 사람에/도시의 침묵보다는 바다의 속삭임이 좋아요~’

이 가사가 던지는 유혹에 이끌려 제주도로 내려온 이도, 실제 푸른 밤을 확인하기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도 모두 소음에 지친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하기위한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최성원도 그랬다.

“대개 가수들은 자기 노래따라 간다고 하잖아요. 제 뇌속에 이 노래가 무의식적으로 명령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그의 제주살이는 정착이 아닌 유목의 생활이었다. 2011년 6월 애월읍에 둥지를 튼 지 1년이 지났을 때, 그는 서귀포 법환동으로 옮겼고, 지금 다시 제주시내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는 “제주도를 제대로 보려면 동서남북, 해안, 산간 6면을 모두 돌아다녀야한다”고 했다.

“제주도는 일단 서울만큼 미친 부동산 가격이 형성돼 있지 않아서 좋고, 건강한 먹거리가 넘쳐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공연을 하려는 가수들에겐 쥐약인 동네예요. 머랄까? 값을 지불하고 보는 공연 문화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조용필 할아버지가 와도 성공하지 못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 낙후성을 보상하는 장치가 바로 자연이에요. 자신을 힐링하면서 순수 음악을 하려는 예술인에게 적합한 곳인 셈이죠.”

그가 생각하는 제주도의 자연은 좀 특별하다. 지역별, 계절별로 다채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그곳의 자연은 예술인의 감성을 풍성하게 자극한다는 것이다.

최성원은 "제주도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깊고 넓어진다"며 "제주도를 제대로 알려면 동서남북, 해안, 산간 6면을 모두 살아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제주도)=김고금평기자

“제주도는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넓고 깊어져요. 최근 예술인들, 특히 뮤지션들이 모이는 기운이 느껴지긴 해요. 다만 옛날 홍대의 경우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음악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교류가 활발했다면, 여기서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곳에 내려오는 사람들의 특징이 남과 어울리는 문화보다 고립을 자청하는 성향이 강하거든요.”

그 고립을 3년 넘게 즐겨온 그는 요즘 음악영화에 푹 빠졌다. 영화감독이 음악 영화를 만들어오던 기존의 패턴에 반기를 들 요량인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음악영화의 대본을 직접 준비중이다.

“지금까지 음악 영화들 보면 진정성이나 현실감에서 약간 동떨어진, 뒷걸음으로 밟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유로운 이 땅에서 (시간도 많겠다) 대본 한 번 써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최성원은 “앞으로 도시 생활을 할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 음악의 현주소가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는데다, 상업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때문에 뮤지션, 특히 인디뮤지션들이 많이 내려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 여기 제주도는 가끔 푸른 밤이 보이는 덜 오염된 곳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