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베팅' 붐…브라질·아르헨 다음은 남아공·말레이

'정치 드라마에 베팅하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자산가격이 고평가돼 있고 수익률이 낮은 지금같은 상황에서 금융시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정권 교체와 같은 정치 드라마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이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말레이시아가 '정치적 베팅'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브라질 증시 대표지수인 보베스파는 올 들어 24%가량 올랐다. 아르헨티나 증시의 머벌지수는 19% 뛰었다. MSCI신흥시장지수가 올해 7.3%, 미국 뉴욕증시의 S&P500지수가 2.8% 오른 데 비해 돋보이는 상승세다.

보베스파-MSCI신흥시장지수 변동률 추이(%, 2015년 12월30일=0)/그래프=블룸버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증시 호황은 두 나라가 모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나타난 것이어서 더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변혁에 대한 기대감이 두 나라 증시의 호황을 이끌었다고 지적한다.

브라질에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탄핵 위기에 직면했다. 브라질 하원이 지난 17일 대통령 탄핵안을 승인하면서 호세프 대통령의 운명은 상원의 결정에 달렸다. 호세프 정권의 퇴진으로 브라질이 정정불안에서 벗어나고 새 정부가 최악의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친시장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가 브라질에 대한 투자 수요를 북돋웠다.


아르헨티나에선 지난해 취임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의 친시장 정책이 이미 호평을 받고 있다. 덕분에 이 나라는 전날 165억달러(약 18조76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아르헨티나의 국채 발행은 2001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 발행한 물량은 예상치를 크게 웃돈 것으로 신흥국으로선 역대 최대 규모다. 700억달러에 달하는 주문이 몰릴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인기영합주의 정권이 지난해 12월 친기업 성향인 마크리 정권으로 교체되자마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잠재적인 새 투자처로 아르헨티나에 눈독을 들였다고 지적했다.

WSJ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모두 경제난을 겪고 있지만 새 지도자와 정책 변화에 대한 낙관론이 두 나라 증시와 채권시장을 띄어 올렸다고 분석했다.

2014년 정권 교체를 이룬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나라 증시는 당시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몇 개월간 20%가량 급등했다. 두 나라 증시의 랠리는 선거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져 다른 신흥시장과 대비를 이뤘다.

WSJ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정치 드라마에 베팅하는 게 최근에는 더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당장 매력적인 투자처가 적고 여러 자산시장이 원자재 가격이나 미국의 금리인상 전망 등에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이 잦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새미 무아디 T로우라이스 신흥시장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투자자들이 촉매제를 가진 희귀한 스토리를 찾는다"고 말했다.

WSJ는 정치적 베팅을 위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주목할 나라로 남아공과 말레이시아를 꼽았다. 제이콥 줌마 남아공 대통령과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는 부패 혐의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남아공과 말레이시아는 자원부국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만 청년 인구가 많아 성장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투자 수요가 적어 자산가격도 대체로 저평가돼 있다고 WSJ는 지적했다.

신문은 다만 신흥시장의 투자 리스크(위험)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워낙 뿌리 깊고 세계 경제 여건이 취약해 투자 열기가 금세 식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이 기대한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집권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라자크 총리와 줌마 대통령의 임기는 각각 2018년, 2019년에야 끝난다.

WSJ는 남아공과 말레이시아 다음으로 투자자들이 꿈꾸는 정권 교체 대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며 언제든 꿈은 꿀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