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농가, 무역전쟁 여파 줄줄이 파산…트럼프 재선 '적신호'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농민연맹 연례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시작한 무역분쟁으로 피해를 본 미국 중서부의 농가들이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지지층이었던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트럼프의 재선도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무역분쟁으로 농산물 가격이 더욱 하락하면서 미국의 중서부 팜 벨트(농업지대) 농가가 부도를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 중서부에서 지난해 연방파산법 제12조(챕터 12)에 따른 파산 신청 농가 수는 최근 10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일리노이, 인디애나, 위스콘신이 속한 제9 연방순회항소법원의 신청된 파산 신청 수는 2008년 대비 100% 증가했다. 다른 중서부 팜벨트 지역이 속한 제8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파산 신청 수는 10년 전 대비 98%, 제10 연방순회항소법원은 59%나 늘었다. 중서부 팜벨트는 미국에서 한해 생산되는 농산물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한다.

연방파산법 제12조는 부도 위기에 놓인 농어업 종사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80년대 농업 위기 때 제정됐다.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중지시켜 채무자의 파산을 막는 대신 채무자는 3~5년 내로 빚을 갚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빚이 410만달러(46억원) 이하인 농어업 종사자만 신청할 수 있다.

WSJ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멕시코와 무역분쟁을 벌이면서 농가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미국 중서부 농가의 주 생산품인 대두와 옥수수, 육류는 지난 수년 간 브라질·러시아 등과의 경쟁 및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하락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중국과 멕시코가 무역분쟁으로 미국산 우유, 치즈, 대두, 육류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농가가 결정타를 맞게 됐다는 설명이다.


소득이 줄면서 미국 농가는 빚더미에 오르게 됐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농가의 중간소득은 전년 대비 1500달러가량 떨어졌다. 빚 규모는 지난해 4090억달러를 기록했다. 1980년대 발생한 농업 위기 이후 최대치다. 당시에도 미국은 소련과의 곡물 무역을 전면 중단했고, 이에 농가들이 빚더미에 오르며 도산한 바 있다.

소규모 농가들이 먼저 밀려나면서 양극화 현상도 심화된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소규모 농가들이 장비와 땅을 팔면서 기업농들이 이를 구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100년 가까이 대를 이어온 농가들도 쓰러지는 상황이다. 미국농가신용서비스의 팀 코흐 부사장은 "농가들에게 (파산 이외의) 선택지가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오늘날 우리가 내린 어려운 선택(무역분쟁)들로 인해 앞으로 수백 년간 엄청난 보상을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의 위대한 농가들은 이를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인내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온 중서부 농가들의 상황이 달라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분석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수백 명의 미국 농민들과 농기업 대표들은 이번 주 워싱턴에서 무역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번 시위를 주도하는 '자유무역을 위한 농민들'(Farmers for Free Trade)의 브라이언 쿠엘 사무총장은 "많은 농민들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을 속는 셈치고 믿어주고 있다"며 "그러나 무역분쟁이 길어질수록 (정치) 역학이 변화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