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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 여성의 역사

  • 최지은 (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19.06.12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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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형제들에게 하려는 부탁은,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1837년,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인 세라 그림케는 말했다. 1873년, 일리노이주에 사는 기혼 여성 마이라 브래드웰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했다. 1956년, 하버드 로스쿨 신입생 500여 명 가운데 여성은 9명뿐이었다. 학장은 그들을 파티에 초대해 여자가 ‘왜’ 여기, 즉 남성들의 자리에 왔느냐고 물었다. 1년 먼저 로스쿨에 입학한 남편을 둔 한 여성이 대답했다. “남편을 더 잘 이해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이하 RBG)였고,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RBG는 어려운 형편에도 외동딸의 학자금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뜻대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을 거두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을 꿈꾸었을 뿐이다. 여성이 2%도 채 안 되는 환경에서 압박에 시달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도서관 출입을 제한당한 적도 있지만 뛰어난 성적으로 로스쿨을 마쳤다. 물론 그의 목을 밟고 있는 발은 치워지지 않았다. RBG는 여성이고 어머니이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로펌 면접에 수차례 떨어졌다. “다른 (남자) 변호사들의 부인이 질투할 것”이라며 그를 탈락시킨 곳도 있었다. 1963년, 마침내 대학교수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도 그는 남성보다 형편없는 봉급을 받아야 했다. 여성에게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거나 극도로 제한된 시대를 살아온 그가 처음부터 투사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RBG는 점점 영역을 넓혀나갔다. ‘여성과 법’ 강의를 개설했고, 미국시민자유연맹 산하의 여성권익 증진단을 공동 설립했고, 다른 여성 교수들과 함께 대학의 성차별적 급여체계에 관한 집단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시대의 변화가 그를 싸움의 한복판으로 밀어 올렸고,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싸우며 변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1973년, RBG는 처음으로 연방대법원에서 구두변론을 진행했다. 공군 중위이자 기혼 여성인 샤론 프론티에로가 기혼 남성 동료들과 같은 주거, 의료, 치과 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제기한 소송이었다. 프론티에로는 “착한 여자는 소송 따윈 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고, RBG가 그를 대변하여 아홉 명의 남성 대법관들 앞에 선 것이었다.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한 고용 차별은 소수집단의 차별만큼 만연하지만, 훨씬 교묘하여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성별 기반 차별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편견을 낳고 성별은 낙인으로 작용해 여성 보호의 명목으로 여성의 고소득 취업과 승진을 방해합니다.”라는 변론과 함께 앞서의 세라 그림케의 말을 인용한 것도 이때였다. 훗날 그는 “성차별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을 관객으로 마주하면서 성차별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제 일이었죠.”라고 회상했다. 그는 차별받는 여성의 편에 서는 동시에, 혼자 어머니를 돌보는 비혼 남성이 여성이나 홀아버지와 달리 간병인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를 받지 못하는 데 대한 소송을 맡았고, 가장 역할을 하던 부인이 출산 중 사망하자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회보험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 남성을 변호했다. RBG의 전략은 남성 중심의 사법시스템 안에서 성별에 기초한 차별이 ‘합법’인 현실의 불의를 드러내고 그것이 헌법상의 평등 원칙을 위배함을 증명함으로써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On the Basis of Sex’, 즉 ‘성별에 기초하여’라는 제목을 가진 미미 레더 감독의 영화는 RBG의 로스쿨 시절과 70년대 성차별 소송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앞둔 이 영화의 홍보 과정에서 일어난 논란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별에 기초한 차별 그 자체를 보여준다. CGV 아트하우스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홍보용 포스터에서 ‘영웅적인(heroic)’이라는 원본의 문구를 ‘러블리한 날’로, ‘정의(justice)’, ‘행동가(activist)’, ‘지도자(leader)’ 같은 단어는 ‘힙스터’, ‘핵인싸’, ‘데일리룩’ 등으로 바꿔 올렸다. ‘꾸.안.꾸한 날(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럽게 꾸민 날)’까지, 대부분 외모와 유행에 치중한 표현들은 평생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싸워온 인물에 대한 모독이자 영화의 주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CGV 아트하우스 측은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의 의미를 본의 아니게 훼손했다”라는 해명은 여전히 강한 의문을 남긴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까지 심각한 훼손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철저한 무지가 필요한가?

1993년, RBG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굿이어 타이어 공장에서 근무한지 20여 년이 지나서야 자신이 남성들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아왔음을 알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릴리 레드베터는 비록 대법원에서 패소했지만, 2007년 판결 당시 자신의 편에 서서 소수의견을 낭독했던 RBG의 존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자서전 ‘기나긴 승리’에 썼다. “법정의 유일한 여성으로서 반대의견을 냈을 때 긴즈버그 판사는 법정에 임명된 여성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의 소송은 대법원에 누가 임명되었는지가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만약 긴즈버그 판사나 스티븐스 같은 판사가 법정에 한 명만 더 있었다면, 현실 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을 이해하는 이가 한 사람만 더 있었다면 소송의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2009년,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딸인 소니아 소토마요르가 세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최초의 히스패닉계 대법관으로 지명되었을 때도 RBG는 환호하며 말했다. “판결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 여성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는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대법관의 수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홉 명입니다.”라는 답변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3년생, 86세의 RBG는 오늘도 연방대법원에 있다. 그는 이제 세 명의 여성 대법관 중 한 명이지만, 대법원의 구성이 보수화되며 그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여전히 무겁다. 그러나 평생을 걸고 평등을 이루기 위해 싸워 온 여성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1973년, 샤론 프론티에로 사건에서 RBG는 승소했다. 그러나 성별에 근거한 차별적 처우를 위헌으로 만들려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20년이 지난 뒤 연방대법관 청문회에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논의를 반복해야 함은 알았습니다. 적어도 대여섯 번은요. 단번에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지속적인 변화는 단계를 거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왔다.

참고 자료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노터리어스 RBG’ (아이린 카먼, 셔나 크니즈닉 지음. 정태영 옮김. 글항아리)
‘더 나인’ (제프리 투빈 지음. 안경환 감수. 강건우 옮김. 라이프맵)
‘소니아 소토마요르’ (안토니아 펠릭스 지음. 안혜원 옮김. 세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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