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수입국 된 '마약 한국'…단속·수사 뒷받침은?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정보·수사기관에서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있는데, 제도적으로 뒷받침은 잘 되질 않아요."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난 국가정보원 국제범죄담당 H요원은 굳은 표정으로 답답함을 토로했다. 마약 밀매조직의 수법과 방식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하는데 정보·수사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국내 마약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터넷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로 비대면 거래가 가능해지며 누구나 마약을 접하게 된 영향이 있다. 소비 시장이 살아나며 1990년대 이후 맥이 끊겼던 마약제조도 다시 꿈틀대고 있다.

올해 3월 미국 국무부가 발간한 '2019 국제 마약통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마약 소비·생산국으로 분류된다. 필로폰 등의 원료인 에페드린과 슈도에페드린이 2017년 각각 38.253t(톤)과 37.753톤이 수입돼 5대 수입국 명단에 올랐다.

마약 유통·소비가 예전과 달리 활발한 양상을 보이지만 정보·수사기관은 운신의 폭이 좁다. 해외 정보·수사기관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언더커버'(위장잠입 수사), '플리바게닝'(사법거래) 등이 모두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는 별칭처럼 좀처럼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수사의 대부분을 탐문과 첩보에 의지해야 한다. 하나의 첩보가 실제 단속과 수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좀처럼 많지 않다.

정보·수사기관은 작은 단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 투약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중간 공급책들에 대한 암묵적 플리바게닝이 대표적이다. 마약 수사는 유통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쥔 공급책에 대한 특별 관리가 필수적이다.

경찰이 텔레그램 등에서 마약을 판매하는 것처럼 꾸며 함정 수사를 했다는 투약자들의 볼 멘 소리도 왕왕 들려온다. '범의'(범죄 행위를 하려는 의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엄연히 불법적 행위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현실적으로 마약 단속·수사가 쉽지 않다는 방증인 셈이다.

H요원은 "마약 조직은 정보·수사기관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하고, 최신 보안채팅 등 기밀 유지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등 갈수록 단속과 수사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은 언더커버 등 다양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지만 우리는 권한 남용 우려 등으로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어렵게 마약사범을 잡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점도 정보·수사기관의 힘을 빼는 요인 중 하나다. 대검찰청이 집계한 2017년 마약사범(기소 4681명) 중 징역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은 비율은 0.0004%(2명)에 불과했다.

변곡점에 선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마약 대책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여건에 맞는 현실적 법령 마련 등이 필요하다"며 "마약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종합적인 점검·대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