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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때처럼…손발 못 쓰는 난, 또 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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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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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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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디자인기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이지혜 디자인기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메르스 이후 무려 4년입니다. 4년 동안 계속 요구했어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 아닙니까? 의지가 없는 거죠, 의지가."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의 장애인 대응책 부재를 지적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장애인이 느끼는 코로나19의 두려움은 비장애인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전염병에 걸리느냐 마느냐를 떠나, 당장 먹고 입을 걱정부터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정부의 대응책은 사실상 '부재' 상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중증장애인이 홀로 남겨질 때


중증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 없인 밥 한 숟갈,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렵다. 이들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게 바로 활동지원사다. 상당수의 중증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런데 만약 담당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에 감염되거나 자가격리자에 포함된다면 중증장애인의 삶은 어떻게 될까.

실제 대구에선 현재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가족 없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던 중증장애인 8명이 자가격리 상태에 놓였다. 활동지원사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활동지원사가 전염병에 감염돼 중증장애인이 자가격리를 해야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정해놓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없다. 보건복지부는 이번에도 사후적인 대응책을 내놨다. 활동지원사가 활동할 수 없어 가족들이 보살펴야 하는 경우 가족들을 임시 활동지원사로 인정해 급여 등을 지급하는 방안, 활동지원사들이 남아있는 타지역으로 이동해 서비스를 받게 하는 방안 등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누군가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실현 가능성도 문제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정부 측 대응이 늦어지자 지난달 28일부터 자체적으로 자가격리 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인력 모집에 나선 상태다.



메르스 때 제기한 '차별구제소송'은 여전히 법원에…그러다 코로나가 왔다


장애인들이 전염병 확산 사태에서 정부에 목소리를 높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메르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문제는 심지어 법정 다툼까지 갔다.

2015년, 지체장애인 2급 A씨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됐다. 평소 24시간 내내 케어를 담당해줬던 활동지원사가 "감염이 두렵다"며 갑자기 연락을 끊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A씨는 신장투석 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지 못하면 건강 유지가 힘든 처지였다. 결국 그는 홀로 감염 위협을 무릅쓰고 메르스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을 찾아가 입원을 요청했다.

장애인 단체는 A씨 등 피해를 입은 장애인들을 대표해 2016년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이 겪은 손해를 정부가 배상하고, 전염병 확산 상황에서 시행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4년 반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해당 소송은 여태 1심 결론조차 내지 못한 상태다. 여전히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이다.



"우리가 잘 만들 테니 기다려보라"던 정부…여전히 "작업 중"


소송 진행이 이토록 더딘 까닭은 재판부가 제안한 중재안을 정부 측이 사실상 거절했기 때문이다. 재판 시작부터 원고 측은 지속적으로 감염병 대응책 마련에 대한 요구를 이어갔다. 직접 해외사례를 조사해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법원은 중재를 권유했다. 애초에 원고 측이 원하는 것도 '승소'가 아닌 '정책의 변화'였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법원은 2017년 "원고 측이 원하는 장애인 감염병 예방 매뉴얼을 포함한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수립하라"고 조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대책 수립은 이미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정안을 따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원고 측이 만족할 만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소송으로 돌아온 사건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아무것도 진전되지 못한 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정부에서 마련하겠다고 했던 대응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다.

원고 측 대리를 맡은 홍석표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저도 이 사건이 양쪽 당사자가 합의를 해야 종결되는 사건이라 생각한다"며 "저희는 계속 보건복지부 쪽 담당자와 이야기를 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공무원인 담당자가 계속 교체되고 하는 상황 속에서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측과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 협의를 활발하게 진행해 대응책을 잘 마련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정부가 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 없어 장애인들이 감염병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대책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반면 복지부 측은 "대응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장애계와 논의 중"이란 입장이다. 복지부 측 담당자는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건 우리도 인지하고 있고, 장애계 쪽과 논의를 해나가는 중"이라면서도 "다만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서로 이견도 많은 부분이라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판사 문혜정)는 다음 변론기일을 내달 17일로 예정해 둔 상태다.



"사후적 대책 아닌 사전적 대책 절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19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장애 폐쇄병동 코로나19 확진 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치료대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장애인 인권이 없는 차별적인 코로나19 대응, 국가인권위원회 긴급구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장애 폐쇄병동 코로나19 확진 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치료대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장애계와 법조계는 전염병 사태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선제적 조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우리가 메르스 이후 계속 대응책을 요구하고 정부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는데 전혀 반응하지 않다가 다시 코로나가 왔다"면서 "계속 일이 터지면 우리가 '이게 필요하다'라고 요구하고, 그러면 정부가 도와주는 사후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그러다 보니 원활하게 지원이 안 되고 혼란한 상황 속에서 결국 공공이 해야 할 일을 민간단체가 다 부담하고 있다"며 "선제적인 방안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왕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는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근본적인 사회 시각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재난 상황에 대한 기본법률인 '재난안전법'에도 장애인을 위한 어떠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은 조문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르기 때문에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별도의 조치가 분명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엔 그런 것들이 부족한 처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차별구제소송'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변호사는 "사실 재판부가 판결로 정부에게 '이렇게 해라' 라고 명령하긴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서 "분명 보완책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 대응책이 없다고 해서 법적 처벌이 가능한 '차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가를 보면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부와 사회가 조금 더 먼저 세심하게 장애인을 기준에 둔 제도 마련에 앞장서 주는 방법밖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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