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이 내 고모…" '피해액 800억' 투자 사기의 전말

기사와 상관 없는 다단계 판매를 빙자한 사기 단체의 세미나 모습. 해당 단체는 12만원만 투자하면 5.2조원 번다며 노인들을 속이다 검거됐다. /사진=서울 강남경찰서

"몰랐다"는 말에 절망했다. 직장에서 한푼씩 모은 돈을 퇴직하며 '올 인'한 주식회사는 사실 '주식투자 사기꾼'이 꾸며낸 신기루였다.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와 홍보를 독려했던 회사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했다. 어른거리는 투자 수익금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손에 쥔 것은 빈 통장과 휴지조각 같은 회사 등록서류뿐이었다.

가짜 영농조합, 주식회사 대표로 둔갑해 감언이설을 일삼은 사기꾼은 '김서백'. 이마저도 사람들을 모집할 때 사용한 가명이다. 여기저기서 모아 그에게 투자한 7000만원 돈이 한스럽기만 하다.


몇개월 동안 수익금 잘 돌려줬다는 말 믿고 시작한 주식 투자 사기
2018년 10월 어느날, 한때 같이 일한 옛 동료 A가 경남 창원에서 찾아왔다. 서울에 있는 회사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기가 투자하던 회사에서 11월초 '위 아일랜드 영농조합'을 차린다며 투자를 제안했다. 본인도 조합원이자 투자자라던 A는 동석한 동료들 앞에서 "큰 돈까지 안 넣어도 고수익이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적은 돈 고수익'. 혹시 사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해당 조합 창원센터장이었던 A는 "대표가 김서백이란 사람인데 현재 운영중인 어업조합에서도 수익금 배분이 잘 된다"며 "공개세미나를 수없이 다녀도 법적으로 문제도 안 걸리더라"며 말을 이었다.

확인이나 해보자는 마음에 대구, 전주, 순천에서 열리는 투자 세미나 참석했다. 한 번 세미나에 참여한 인원은 200~300명쯤. 강단에 선 김서백은 "투자 원금은 무조건 보장한다"며 "소액이라도 투자하면 원금의 3~20배 수익금을 돌려주니 믿으라"고 열변을 토했다. 칠판은 돈 모아 주식회사를 세워 투자, 영농, 아이돌 육성 등 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계획으로 금세 가득찼다.


사람들은 김서백이 그해 3월부터 울산에 '아일랜드 패밀리 어업조합'을 차려 운영하며 비슷한 사업을 운영해왔다고 했다. 이미 돈을 넣던 조합원, 투자자들에게 물으니 월 100만원씩 넣어도 다달이 수입이 잘 들어온다"고 입을 모았다. 투자자 다수는 60~70대 고령층이었다. 이들 중 암 투병 등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 모아놓고 당당하게 투자 제안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액 투자를 받으며 수익금도 잘 주는데다가 "서울대를 나왔다" "이런 고수익 투자법을 처음 한국에 들여온 사람이다" "도예 학교를 운영한다"는 설명을 하는 김서백을 보니 의심이 점점 누그러졌다.

결국 한 달에 100만원씩 투자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카페에서 함께 영농조합을 소개받은 동료들도 하나 둘 돈을 넣었다. 서울 한구석에 작은 원룸을 빌려 투자 방법에 대해 논하며 '부푼 꿈'을 키워나갔다. 투자 기간 동안 수익금은 문제없이 들어오니 의심이 점점 믿음으로 바뀌었다. 퇴직도 몇년 남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괜찮겠지'하는 생각에 인수합병을 목전에 둔 회사도 그만 두고 투자에 나섰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돈 가지고 잠적한 회사 대표 투자 5개월째인 2019년 4월20일. 여느때와 같이 수당이 나오기로한 이날, 김서백이 잠적했다. 김서백과 함께 '이○○'란 이름으로 세미나마다 참여했던 관리 이사도 연락이 끊겼다. 알고보니 둘은 부부 관계였다고 한다. 투자자들의 돈 약 230억원이 모인 영농조합이 '마이 플라이아이 주식회사'로 전환된 뒤다.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한바탕 난리통 속에 김서백을 포함한 주요 공모자 5명의 과거를 되짚어보던 피해자들은 그제서야 김서백 실명이 '김△△'이라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김서백이 도망 날을 정하고 직전에 마구잡이로 돈을 모을 계획이었냐는 의심이 들었다.

투자자들은 김모씨가 서울 동대문경찰서 경제팀에서 받은 수사가 본인들 투자와 관련돼 있다는 것도 20일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 사실이 수사 직후 투자자들에게 퍼졌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믿음 탓에 피해자 대부분이 "투자에 문제 없다"는 김서백 해명을 의심하지 않았다.

광주, 대전 등 각지에서 활동하던 해당 회사 센터장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거센 항의전화를 받았다. 센터장은 세미나 장소를 잡거나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입금받아 회사 계좌에 넣는 역할을 했다. 모인 피해자들은 "아이고 이제 병원비 어떡하냐" "자식 어떻게 보냐"며 머리를 싸잡았다. 그러나 센터장들도 김씨에게 속은 입장이긴 마찬가지였다.

가족에게 내쳐져 찜질방 전전…"한 번 속았다고 삶이 이렇게 망가지다니" 위 이야기는 전 직장 동료 A씨 말을 듣고 투자에 나선 B씨와의 인터뷰를 B씨 시점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현재 B씨는 해당 사건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씨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가는 등 적극적으로 구체책을 마련하고 있다.

B씨는 "이번 사건은 경찰이 별도의 회삿돈 횡령 혐의로 김씨를 수사하다가 큰 돈이 오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추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라 밝혔다. 영농조합, 주식회사를 차려 큰 투자를 받았지만 관련 사업 흔적이 없는 김씨에게서 경찰이 '냄새'를 맡았다는 설명이다.

현재 김씨는 서울북부지법에서 가짜 어업조합을 차려 투자 받은 혐의에 대한 구속 재판을 진행중이며, 부실 영농조합을 주식회사로 꾸며 투자금을 유치한 혐의에 대해 추가 기소당한 상태다. 검찰은 김씨 등 범죄 재산이 155억 원이고 이중 137억원을 압수해 피해자들에게 배분할 계획이라 발표했다.

서울북부지검이 압수한 김씨 등이 사람들을 속여 받은 돈을 바꾼 금괴. 이들은 돈을 부동산, 현찰 등으로 보관했다. /사진=서울북부지검

B씨는 "검찰 수사로 김씨가 숨긴 금괴 등이 발견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B씨 어업조합 사기 공소장에 쓰인 피해 금액만 약 550억원으로, 김씨가 거둬들인 전체 피해액은 최소 800억원에 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김씨 일당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며 "구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 강조했다.

B씨는 "고령 투자자들이 '유명 연예인 윤모씨가 내 고모' '외가가 조선시대 도자기 장인 심수관 가문'이라 주장하는 김씨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며 "가족, 지인에게 돈을 빌려 그들 명의로 투자했기에 입금자 명단에는 1만2000명 넘는 사람 이름이 적혀있다"고 덧붙였다.

"25억원을 투자한 사람도 있는데, 가족에게 내쳐져 찜질방을 전전하고, 병원에서 나오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며 "한 번 홀린 것에 몇 천명 삶이 이토록 망가지냐"는 그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