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문 닫았다? '손 안의 뱅킹'이 있다

4대 은행 비대면 이체 건수, 은행별 주요 비대면 상품/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 서울 양재동에서 플라워카페를 운영하는 김민정씨(가명).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고 숨을 돌리니 '돈 보낼 일'이 잔뜩 남았다. 급전도 필요하고 각종 공과금도 내야 하는데 계좌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은행 문이 굳게 닫힌 시간, 민정씨는 이 모든 일을 휴대폰 하나로 해냈다. 은행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모바일뱅킹으로 '3분 대출'이 가능하고 공과금은 고지서를 찍기만 하면 된다. 계좌 비밀번호는 휴대폰으로 금세 바꿨다.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비대면 거래' 시대가 활짝 열렸다. 1999년 신한은행이 인터넷뱅킹을 오픈하면서 시작된 은행권 비대면 서비스 역사는 어느덧 20년을 넘었다. 하나은행이 2009년 스마트폰뱅킹을 시작하면서 '손 안의 거래'도 가능해진지 오래다.


노년층도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해지면서 비대면 거래는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인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1~2월 비대면 이체 건수는 2억4496만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기간(2억2971만건)보다 1525만건 늘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이체뿐만 아니라 공과금 납부, 대출상환 등을 모두 포함한 비대면 거래량이 지난 1~2월 17억7100만건으로 전년동기(14억3000만건)대비 3억4100만건 증가했다.

은행 모바일뱅킹 앱(애플리케이션)은 '천만 고객'이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NH농협은행 'NH스마트뱅킹' 가입자는 지난달 기준 1622만명(농·축협 포함)에 달한다. KB국민은행 'KB스타뱅킹', 우리은행 '우리원(WON)뱅킹' 가입자 수는 각각 1500만명, 1300만명을 넘어섰다. 신한은행 '쏠(SOL)', 하나은행 '하나원큐' 가입자도 지난해 1000만명을 돌파했다.

오픈뱅킹 시대가 함께 열리면서 비대면 거래는 한결 수월해졌다. 특정 은행에 국한하지 않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다. 신한은행 쏠을 통해 타행 계좌의 돈을 이체할 때 보안카드나 OTP(일회용 비밀번호) 없이 생체인식, 패턴입력만 하면 되는 식이다.


궁금한 점은 은행원 대신 인공지능 캐릭터에 물으면 된다. KB국민은행 비대면 플랫폼 '리브'에선 상담원 '똑똑이'가 항시 대기 중이다. NH농협은행 앱에서는 SK텔레콤의 '누구(NUGU)'를 소환할 수 있다. 음성명령만으로 송금이 가능하다. 우리은행은 자주 쓰는 계좌를 등록한 뒤 휴대전화를 흔들어 접속·거래하는 '모션뱅킹' 서비스를 선보였다.

비대면 전용 상품도 인기다. 3분 안에 대출이 가능한 일명 '컵라면 대출'로 인기를 끈 하나은행에서는 모바일 전용 신용대출 취급액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2조6000억원으로 전년 1000억원대에 비해 급증했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선물하는 적금'은 45만 계좌가 신설되는 기록을 남겼다. KB국민은행은 부동산, 통신과 결합한 각종 '리브 시리즈'로 고객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비대면 서비스는 앞으로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디지털 경쟁력에 은행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비대면 채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디지털 부문이 자체적인 재무목표를 달성하도록 KPI(핵심성과지표)를 개편했다. 노인과 외국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직관적인 화면으로 구성된 '시니어 전용 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비대면 채널을 확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업점 창구에서도 태블릿 모니터 서식 등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며 "모든 사업부문에서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